걷는 길이 바로 기록이다. KBO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LG 박용택(41)은 불혹을 넘겼다. 아직 현역이다. 올해가 마지막이다. 자신과의 약속이자 이미 팬들에게 예고한 것이다.
▲ LG 박용택은 `원 클럽 맨`이다. 2002년부터 19년째 LG 유니폼을 입고 최다 경기 출전과 최다 안타 등 각종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용택이 10월, 선선한 가을 바람 속에 커다란 이정표를 찍었다. 이미 통산 최다 안타를 넘어섰기에 2500안타보다 더 마음을 쏟았던 것이 바로 KBO 개인 최다 출전 기록이었다.
7일 잠실 삼성전에서 통산 최다 경기 출전 1위에 올라섰다. 지난해 은퇴한 정성훈과 공동 1위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
박용택은 ‘원 클럽 맨’이다. 정성훈과 달리 LG에서 시작해 19년째 ‘LG맨’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6일에는 KBO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2500안타의 금자탑을 쌓았다. 잠실 삼성전에서 2-2 동점이던 9회말 1사 1루에서 대타로 나가 우월 2루타를 날렸다.
모두 박수를 보냈다. LG 류중일 감독, 삼성 허삼영 감독은 물론 이젠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옛 스승’ 김용달 코치와 양 팀 선수들이 축하해 주었다. 삼성 박해민과 LG 김현수는 선수 대표로 꽃다발을 증정했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일, 어느 누구도 걷지 않았던 길을 지금 걷고 있다.
# 2020년 10월7일 잠실 삼성전 - 그라운드에 서는 것이 행복
박용택은 지금 주전이 아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로 대타 요원이다. 그래도 좋다. 팀이 이기면 더욱 좋다.
LG는 ‘가을 야구’를 위해 막바지 순위 다툼이 한창이다. 2~3위권을 유지하다 추락하고 있다. 6일 삼성전에선 연장 승부 끝에 패해 5위로 떨어질 정도였다.
7일 현재 69승3무 56패로 4위다. 총 128게임을 소화했다. 남은 게임은 16게임 뿐이다. 아직 2위 복귀가 가능하다. 2위 KT와의 간격은 2게임, 3위 키움과는 1게임 차이이기 때문이다.
박용택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왜 중요한 순간 찾아오는 타격 기회를 최대한 살려나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벤치의 기대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이날 류중일 감독은 임찬규를 선발로 내세웠다. 삼성 선발은 왼손 허윤동. 꼭 잡아야 할 게임이었다. 임찬규가 역투를 거듭했다. 7회까지 4안타 1실점.
삼성도 물러서지 않았다. 허윤동에 이어 6회부터 양창섭을 투입하면서 LG 타선을 꽁꽁 묶어 놓았다. LG 역시 7회까지 두 투수를 상대로 5안타를 치고 1점을 뽑는데 그쳤다.
류중일 감독은 1-1로 팽팽하게 맞선 6회말 선두타자 5번 채은성이 좌중간 안타로 나간 뒤 6번 김민성에게 희생 번트를 지시해 1사 2루를 만들었다. 승기를 잡기 위한 득점이 필요했다.
7번 채은성의 타석 때 류중일 감독은 박용택을 대타로 내세웠다. 선발 허윤동에 이어 6회부터 등판한 양창섭이 오른손이란 것, 박용택의 책임감과 타격 능력 등을 두루 따진 선택이었다.
박용택의 개인 통산 2223번째 출전이 완성됐다. 정성훈과 함께 역대 최다 경기출전 공동 1위가 됐다.
그러나 결과는 벤치의 기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박용택은 우익수 플라이 아웃. 박용택은 7회초 수비부터 김용의로 교체됐다.
LG의 필승 의지는 강했다. 6회말 무득점의 아쉬움을 8회말 말끔하게 씻어냈다. 선두타자 4번 김현수가 우전안타로 나간 뒤 5번 채은성의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1, 2루. 6번 김민성이 2타점 좌익선상 2루타를 날렸다.
LG가 3-1로 앞섰다. LG는 마무리 고우석을 9회에 투입해 승리를 지켰다.
‘대타’ 박용택은 범타로 물러났지만 팀이 이겼으니 기뻤다.
# 2020년 10월6일 잠실 삼성전 - 기록은 기록일 뿐, 팀이 이겨야 한다
축하 받을 상황이 아니다. 박용택은 축하는 정말 고마웠지만 마음은 담담했다. 끝내 연장 승부에서 패한 탓이다.
LG는 이날 삼성과 연장 12회까지 혈투를 펼쳤다. 그러나 연장 12회초 선두타자 이성규에게 결승 좌중월 1점 홈런을 맞고 2-3으로 패했다. 그리고 중간 순위 5위로 떨어졌다.
박용택은 이날 KBO 최초로 개인 통산 2500안타를 기록했다. 분명 새로운 이정표였다.
▲ LG 박용택이 6일 잠실 삼성전에서 개인 통산 2500안타를 기록한 뒤 양 팀 감독과 주장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박해민, 허삼영 감독, 박용택, 류중일 감독, 김현수.
2-2로 맞선 9회말 1사 1루에서 박용택에게 기회가 왔다. 류중일 감독이 9번 구본혁 대신 타석에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이승현을 상대했다.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 직구를 잡아당겼다.
타구에 힘이 실렸다. 쭉쭉 뻗어가던 공이 우익수 구자욱의 키를 넘어갔다. 우월 2루타. 그 사이 1루 대주자 신민재는 3루까지 내달렸다. 승리를 확정할 수 있는 1사 2, 3루의 기회를 만들었다.
▲ LG 박용택이 6일 잠실 삼성전 9회말 1사 1루에서 9번 대타로 나가 이승현의 직구를 받아치고 있다. 이 타구는 제대로 힘이 실렸고, 우익수 키를 넘어가는 2루타가 됐다. KBO리그 첫 개인 통산 2500번째 안타였다.
박용택의 통산 2500번째 안타는 빛이 났다. 그러나 LG는 9회말 득점에 실패했다. 결국 연장 승부를 펼친 끝에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류중일 감독님과 이병규 타격 코치 등의 부담을 덜어드렸다. 가장 존경하는 은사 김용달 코치님으로부터 꽃다발도 받았다. 다행이다.”
마냥 좋을 수 없기에 그저 웃었다.
▲ LG 박용택이 6일 잠실 삼성전에서 개인 통산 2500안타를 기록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LG에서 박용택을 지도했던 삼성 김용달 타격코치가 축하 꽃다발을 건넨 뒤 포옹을 하고 있다.
박용택은 2002년 4월16일 문학 SK전에서 페르난도 에르난데스에게 프로 첫 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KBO리그 최초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 연속 150안타 이상을 터뜨렸다. 유일하게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연속 3할 타율도 기록했다.
이제 남은 꿈은 올 시즌 당당하게 우승하는 것이다. (이창호 전문기자 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