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 승부보다 짜릿한 것은 없다.
올 시즌 시작과 함께 치열한 박빙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 피 말리는 접전을 이어가다 딱 한방으로, 딱 하나의 공 탓에 웃고 울고 있다. 지난 5일 개막 이후 벌써 6게임이 끝내기 승부로 승패가 갈렸다. 끝내기 홈런과 안타가 터지는가 하면 끝내기 실책과 폭투로 고개를 떨군 이들도 있다.
14일 현재 NC가 7승1패, 롯데가 6승2패로 1, 2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밑바탕엔 각각 2번의 끝내기 승리가 있었다.
LG 역시 14일 잠실 SK전에서 정근우의 끝내기 안타로 4연승의 휘파람을 불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 NC와 롯데는 시즌 초반부터 짜릿한 끝내기 승리를 발판 삼아 선두권을 이어가고 있다. LG도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LG 정근우(오른쪽)가 14일 잠실 SK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터뜨린 뒤 동료들의 축하 물 세례를 받고 있다.
반면 KT는 3차례, SK는 2차례의 끝내기 패전에 발목이 잡혀 똑같이 1승7패로 최하위로 떨어졌다.
모두 1점차 승부. ‘1점차 승부에 강한 팀이 진정한 강자다.’
# NC, 2게임 연속 끝내기 승리로 활짝 웃다
NC의 강세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롯데는 모두 의외라는 반응이다. 여하튼 ‘PK 형제’들은 순항 중이다.
NC는 나성범이 부상을 털고 돌아와 타선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롯데는 허문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듯 자율을 강조하는 리더십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 것이 주효하고 있다.
NC는 두 차례나 KT를 제물 삼아 끝내기 승리를 따내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 NC의 2게임 연속 끝내기 승리를 이끌어낸 강진성(왼쪽)과 박석민.
지난 1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KT전이 아주 극적이었다. 나성범이 다리를 놓고, 박석민이 마침표를 찍었다
NC가 4-6으로 뒤진 9회말. KT 이강철 감독은 승리를 굳히기 위해 전유수 대신 마무리 이대은을 마운드에 올렸다.
이대은은 선두타자 9번 권희동에게 좌전안타를 맞고 1번 박민우의 타석 때 폭투를 던져 무사 2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2점차 리드, 타자에게 집중하면 얼마든지 승리를 지킬 수 있었다.
2번 박민우를 중견수 플라이로 돌려세울 때 2루 주자 권희동은 3루까지 내달렸다. 1사 3루에서 2번 이명기는 3루 파울 플라이. 한 고비를 넘겼다.
이제 3번 나성범만 잡아내면 KT의 승리. 큰 것 한방만 조심하면 된다. 볼카운트 2-2, 5구째가 희비를 갈랐다. 이대은이 가운데에서 살짝 몸쪽으로 들어가는 시속 136km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그러나 나성범의 방망이는 거침없었다. 날카롭게 돌았다. 중견수의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130m짜리 아치를 그렸다.
동점 홈런, 6-6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아갔다.
연장 10회말, KT는 이대은에 이어 류희운을 내세웠다. 첫 상대는 5번 박석민이었다. 2볼 1스트라이크에서 4구째 시속 144km 직구를 던진 것이 가운데 높은 곳으로 들어갔다.
박석민이 방망이를 돌렸다. 타구는 멀리 외야로 날아갔지만 홈런이라 직감할 수 없었다. 박석민은 무릎을 꿇고 타석에서 타구를 바라봤다. 왼쪽 폴대 쪽으로 날아가던 공이 페어 지역으로 들어왔다. 끝내기 홈런.
박석민은 이날 8회말에도 선두타자로 나가 좌월 1점포를 날려 추격에 시동을 걸었다. 연타석 홈런을 북 치고 장구 치고 박석민은 신나게 그라운드를 돌았고, NC 선수들의 뜨거운 축하를 받았다.
NC의 끈질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3일에도 이어졌다.
3-4로 뒤진 연장 10회말. 끝내기 승리의 기운이 되살아났다. 선두타자인 2번 대타 김준완이 우전안타로 포문을 열더니 3번 나성범도 우전안타를 날려 무사 1, 3루를 만들었다. 4번 양의지는 좌익수 희생 플라이로 추격의 불씨를 되살렸다.
4-4 동점에서 역전 기회를 이어갔다. 5번 이상호가 유격수의 포구 실책으로 진루해 1사 1, 2루. 6번 권희동에게 끝내기 기회가 왔다.
권희동은 KT 마무리 이대은을 괴롭혔다. 볼 카운트 1-2에서 4구와 5구를 연속 파울로 만들었다. 그리고 6구째를 두들겨 중전안타를 날렸다. 2루 주자 나성범이 홈까지 내달렸다. 그러나 KT 수비에 막혔다. 홈에서 태그아웃.
여전히 NC에게 기회가 있었다. 2사 2, 3루. KT 벤치에선 7번 노진혁을 고의 4구로 내보내면서 2사 만루를 선택했다.
타석에 8번 김찬형 대신 강진성이 들어갔다. 볼카운트 1-2에서 4구째를 때려 중전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1호이자 통산 77호 대타 끝내기 안타였다.
NC는 이틀 연속 너무 짜릿했다.
# 롯데, 행운으로 일군 상승세의 원동력인 끝내기 승리
롯데는 올 시즌 첫 끝내기 승리의 주인공이다.
지난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연장 10회의 승부 끝에 9-8로 이겨 개막 이후 4연승의 휘파람을 불었다.
롯데는 초반부터 SK에게 끌려갔다. 5회까지 1-5로 뒤졌다. 선발 노경은이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였다. 타선도 신통치 않았다.
1-6로 뒤진 6회말 선두타자 2번 전준우의 좌중월 홈런이 터지면서 타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5회말에만 3점을 얻어 4-6로 쫓아갔다.
SK가 도망가면 롯데는 따라가는 형국이 계속됐다. SK는 7회초 다시 2점을 추가해 8-4로 달아났다. 롯데가 다시 7회말 4번 이대호의 2점 홈런 등 3안타와 희생 플라이 1개를 묶어 3점을 보태 7-8, 1점차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8회말 1사 후 7번 마차도가 SK 서진용을 상대로 좌월 동점포를 날려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서서히 행운의 여신이 롯데 쪽으로 미소를 보냈다.
8-8 동점이던 연장 10회말. 롯데가 기회를 잡았다. 선두타자 5번 안치홍이 볼넷, 6번 정 훈이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가 무사 1, 2루. 7번 마치도의 우중간 타수가 SK 중견수 김강민의 호수비에 잡히는 사이 2루 주자 안치홍은 3루까지 갔다.
1사 1, 3루. 8번 정보근이 타석에 들어갔다. SK 투수는 김주한. 초구를 던진 것이 아뿔싸. 시속 128km를 찍은 변화구가 그만 홈플레이트의 왼쪽 앞으로 떨어지면서 원 바운드로 백스톱까지 굴러갔다. 포수가 미처 손을 쓸 수 없었다.
폭투였다. 3루 주자 안치홍이 홈을 밟았다. 롯데가 9-8로 이겼다. 김주한의 끝내기 폭투는 시즌 1호이자 통산 36호.
▲ 롯데 민병헌(가운데 C 표시 유니폼)이 지난 13일 부산 두산전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롯데는 지난 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또 한번 짜릿한 승부를 연출했다.
점수를 주거나 받거니, 서로 공격력을 앞세워 난타전을 이어갔다. 5회까지 5-5, 이후 싸움은 롯데가 먼저 점수를 추가하면 두산이 다시 쫓아갔다.
롯데는 5-5 동점이던 6회말 2번 전준우의 2루타 등 3안타를 묶어 2점을 보탰다. 롯데가 7-5로 도망가자 두산은 7회초 최주환의 3점 아치로 단숨에 승부를 8-7로 뒤집었다. 롯데는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8회말 볼넷 3개와 이대호의 2루타 등으로 2점을 뽑아 다시 9-8로 앞서 갔다. 9회초만 넘기면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그러나 9회초 믿었던 마무리 김원중이 선두 타자인 3번 오재일에게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동점 1점포를 맞았다. 그나마 후속 타자 3명을 별 탈 없이 처리해 다행이었다.
운명의 9회말. 허문회 감독은 내심 선발에서 제외한 뒤 7회부터 투입한 선두타자 8번 민병헌에게 큰 것 한방을 기대했다. 민병헌이 마음으로 읽었을까.
끝내기 홈런으로 화답했다. 두산 투수 이형범의 시속 137km짜리 초구 슬라이더를 제대로 밀어쳐 오른쪽 담장 너머로 날려버렸다. 시즌 2호 끝내기 홈런이었다.
롯데의 상승세는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 살아나 회생한 것이리라.
▲ KT 2루수 박승욱은 지난 10일 잠실 두산전 연장 11회말 2차례의 연속 실책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통산 81번째 끝내기 실책의 불명예를 썼다.
이밖에 두산은 지난 10일 잠실 KT전에서 연장 11회말 끝내기 실책에 힘입어 13-12로 이겼다. 1사 1, 2루에서 1번 김인태의 2루 땅볼을 KT 박승욱이 어정쩡하게 잡아 1루에 악송구한 덕에 2루 주자 허경민이 홈까지 내달려 승리를 챙겼다.
시즌 1호이자 통산 81번째 끝내기 실책이었다.박승욱은 연장 11회말 1사 1루에서 9번 정수빈의 땅볼을 유격수 심우준에게 제대로 던져 주지 못해 아웃 카운트를 보태지 못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연이은 실책으로 고개를 숙였다.
승부는 계속된다. 웃고 울 수밖에 없는 곳이 승부의 세계다.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다.
짜릿함은 좋다. 그러나 순간이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