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서른여덟이다. 불혹이 눈앞이다. 유니폼을 벗었다. 아쉬움도 남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세월 앞에 큰 짐을 내려놓은 듯하다.
KIA 정성훈과 KT 이진영은 1980년생 동갑내기다. 1999년 '까까머리' 고졸 새내기로 프로에 뛰어든 뒤 올 시즌까지 20시즌 내내 비지땀을 쏟았다. 땀내가 떠나지 않았다. 시나브로 시간이 흘렸다.
▲정성훈(왼쪽)은 광주일고를 거쳐 해태, 이진영은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쌍방울에서 각각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둘 다 입단 초기엔 앳띤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성훈은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해태, KIA를 거쳐 현대, LG에서 뛰다 올해 고향에 돌아와 한 시즌을 보냈다. 2003년 1월, 광주를 떠났다가 15년 만의 귀향과 함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진영은 군산상고를 졸업하던 1999년, 당시 전북 연고 구단이었던 쌍방울의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했다. 그리고 쌍방울이 해체되면서 2000년부터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 뒤 LG, KT에서 뛰었다. ‘3할 타자’로 기억된다. 늘 타선의 힘이 됐다.
이들의 행보는 닮은 꼴이다. 2009년 똑같이 자유계약선수(FA)로서 LG로 이적해 7년 동안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결국 이진영은 2015년 시즌 이후 세대교체 바람에 밀려 보호선수 명단에서 빠졌고, 2차 드래프트 때 KT로 옮겼다. 정성훈은 2017시즌이 끝난 뒤 방출됐고, 고향 팀 KIA로 돌아갔다.
▲정성훈(왼쪽)과 이진영이 통산 최다 경기 출전 1, 2위에 오르면서 현역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다. 1999년부터 올 시즌까지 20시즌 동안 숱한 기록을 남긴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정성훈과 이진영은 숱한 기록을 남겼다.
둘 다 개인 통산 2000안타를 돌파한 주인공이다. 정성훈은 2016년, 이진영은 2017년 각각 2000안타 고지를 넘었다.
특히 나란히 역대 최다 경기 출전에선 나란히 1, 2위로 이름을 올렸다. 정성훈은 통산 2223게임, 이진영은 2160경기에 나갔다. 그동안 최다 경기 출전 1위였던 양준혁을 두 계단 밑으로 밀어냈다.
이들은 더 이상 팬들의 환호 속에 그라운드에서 뛸 수 없다. 하지만 이름 석자와 기록은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 정성훈 - ‘소금’처럼 꼭 필요했던 ‘건실한 내야수’
정성훈은 건실한 내야수다. 유격수와 3루수를 두루 맡았고, 1루에서도 안정감을 보였다.
고교 시절부터 강한 어깨에다 타격 재주까지 갖췄다는 평가였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버티고 있던 해태에 입단하자마자 108경기에 출전했다. 모두 깜짝 놀랐다.
정성훈은 입단 첫 해였던 1999년 108게임에서 홈런 7개를 포함한 107개의 안타로 타율 2할9푼7리와 37타점을 기록했다. 고졸 신인으로서 역대 4번째 100안타를 넘어선 주인공이 됐다. 주전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쑥쑥 성장했다.
▲정성훈은 건실한 내야수다. 화려하지 않지만 공수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서 해태, KIA, 현대, LG를 거치면서 20시즌 동안 활약했다.
그러나 투타 보강에 나선 KIA는 2003년 1월15일 현대 박재홍과 정성훈의 맞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정성훈은 입단 4년 만에 타향살이를 시작, 14년 동안 객지에서 생활했다.
정성훈의 플레이는 화려하지 않다. 수비나 공격에서 확 눈에 띠는 활약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선수였다. ‘통산 최다 출전 경기 1위’라는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프로 세계는 ‘전쟁터’다. 작은 실수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다. 게으름은 곧 추락이다. 실력이 부족하면, 슬럼프가 찾아오면 언제든 대체 선수가 나타난다.
정성훈은 그런 곳에서 20시즌 동안 2223게임에 출전했다. 해마다 평균 100게임 이상을 나간 셈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의 결실이다. 올 시즌엔 주로 대수비나 대타로 88경기에 나갔다. 홈런 4개를 포함한 54개의 안타로 타율 2할9푼5리와 28타점을 기록했다.
정성훈은 송정동초등학교, 무등중학교, 광주제일고를 거친 광주 토박이다. 올해 3월 24일 KT전를 상대로 고향 복귀전을 가졌다. 지난해까지 통산 최다 출전 경기에서 양준혁과 공동 1위였으니 신기록은 당연한 일. 팬들의 힘찬 박수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
▲정성훈이 2009년 7월28일 잠실구장에서 개인 통산 100홈런을 기록한 것에 대해 시상식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이영환 LG 단장, 김재박 감독, 정성훈, 최동원 KBO 경기운영위원.
정성훈은 떠난다. 개인 통산 2223게임에 나가 홈런 174개를 포함한 2159개의 안타로 타율 2할9푼3리와 타점 997개를 만들었다.
KIA 코치로서 지도자의 길까지 보장 받았으니 ‘복 받은 야구인’이다.
# 이진영 - 한 때 ‘국민 외야수’라 불린 ‘3할 타자’
2018시즌이 끝났다. KT는 탈꼴찌에 성공했다. 59승82패 3무로 9위를 기록했다.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단장에 이숭용 전 코치를 선임하더니 이강철 두산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영입했다. 이진영에겐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 이진영은 심사숙고, 은퇴를 결심했다. 야구사의 한 페이지에 ‘3할 타자’로 남기로 했다.
▲이진영은 쌍방울, SK, LG, KT를 거치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SK에선 두 차례나 챔피언 반지를 끼는 영광을 안았다.
이진영은 올 시즌 110경기에 나가 홈런 3개를 포함한 90안타로 타율 3할1푼8리와 39타점을 기록했다.
이로써 통산 20년 동안 2160경기에서 타율 3할5리, 안타 2125개를 기록했다. ‘2000게임, 2000안타, 3할’이란 꿈같은 대기록을 남겼다.
KT는 내년 시즌에 앞서 이진영의 은퇴식을 준비하고 있다. ‘2000게임, 2000안타, 3할 타율’을 기록한 타자에 걸 맞는 예우를 할 계획이다.
▲이진영은 은퇴를 결정한 뒤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SK 시절 코나미컵에 출전했을 때 이진영의 열성적인 일본 여성 팬이 커리커처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진영은 ‘챔피언의 환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수다. 2007년과 2008년 SK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만끽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한국의 4강행을 이끈 덕에 팬들로부터 ‘국민 우익수’라 불린데 이어 기쁨이 이어졌다.
이진영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3할 타자’ 중 한 명이다. 통산 20시즌 동안 여러 기념비적 기록을 만들었다. 역대 7번째 2100안타, 13번째 3000루타 등을 기록했다.
이진영은 은퇴를 덤덤하게 받아 들였다. KT는 변화가 필요하고, 최고참으로서 책임감을 느꼈고, 이젠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결단을 내렸다. 쌍방울, SK, LG, KT를 거치는 동안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구단과 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이진영은 언젠가 야구장에 돌아와 자신의 노하우와 경험을 전하려 한다.
‘서른여덟’ 정성훈과 이진영, 프로야구 선수로서 20년. 땀은 기록으로 남는다. (이창호 전문기자 / news@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