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6월’이 갔다. 이제 7월이다.
롯데에게 6월은 우울한 달이다.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우던 날, 어김없이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26게임에서 12승12패 2무, 5할 승부를 했지만 무려 54개의 홈런포를 터뜨리며 ‘대포 군단’의 이미지를 심었던 것을 떠올리면 씁쓸한 결과였다.
롯데는 6월 마지막 날, 대전구장에서 KBO리그 월간 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롯데는 6월 1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선 무려 7개의 소나기 홈런을 쏟아내면서 13-7로 이기는 등 24게임에서 대형 아치를 그렸다. 6월 12일 삼성전과 22일 LG전에서만 홈런포를 작동하지 못했을 뿐이다.
54개의 6월 홈런 중 앤디 번즈는 12개로 최다를 기록했고, 이대호와 전준우가 각각 9개로 홈런 행진을 이끌었다. 민병헌은 5개, 손아섭과 채태인이 각각 4개, 이병규도 3개를 터뜨리면서 베테랑의 힘을 보여줬다.
여기에 한동희와 신본기가 2개, 정훈, 문규현, 김동한, 황진수가 각각 1개로 힘을 보태는 등 총 13명이 홈런 타자로 등록했다.
▲롯데 번즈(왼쪽)는 6월에만 1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롯데가 월간 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우는데 앞장섰다. 그러나 롯데는 허술한 뒷문 탓에 만족스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마무리 손승락(오른쪽)이 무너지면 속수무책이다.
한편 이대호는 6월 23일 잠실 LG전에서 5시즌 연속 20홈런을 달성했다. 하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이날 LG 박용택이 개인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우면서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했기 때문이다.
# 6월 30일 대전 한화전, 월간 팀 최다 홈런 신기록
6월 앤디 번즈의 방망이는 뜨거웠다. 퇴출설이 솔솔 고개를 들자 정신을 번쩍 차린 것일까.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IA전에서 시즌 6호 아치를 그리더니 불이 붙었다.
6월 14일 삼성전부터 20일 KT전까지 6게임 연속 대포를 쏘아올리는 등 이날 이전까지 무려 11개의 홈런포를 터뜨렸다.
롯데는 이미 6월 29일 한화전에서 신본기가 시즌 6호 홈런을 샘슨에게 뽑아내면서 월간 팀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세웠다. 1999년 5월 해태가 기록한 월간 팀 최다 홈런(52개)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과연 신기록을 만들 수 있을지 관심거리였다.
2-2 동점이던 4회초. 6번 번즈가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갔다. 한화 선발 샘슨은 초구에 볼을 던졌다. 번즈는 2구째가 들어오자 주저하지 않고 방망이를 돌렸다.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115m짜리 시즌 17호째 좌월 1점 홈런이 됐다.
6월 들어 롯데가 그려낸 53번째 아치였다. 역대 팀 월간 최다 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롯데는 6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번즈의 시즌 17호째 홈런으로 6월 53번째 아치를 그려 월간 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롯데는 번즈의 홈런으로 주도권을 잡고 7회까지 3-2로 앞서 나갔다.
8회초 한화 벤치가 바쁘게 움직였다. 1점차 승부인 만큼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용덕 감독은 서균을 빼고 선두타자 1번 전준우의 타석부터 베테랑 송은범을 투입했다. 그러나 볼넷.
무사 1루에서 롯데 조원우 감독은 2번 정훈 대신 왼손 채태인을 내세우자 한용덕 감독도 송은범을 빼고 왼손 투수 김범수로 맞불을 놓았다. 채태인은 투수 땅볼에 그쳤고, 1루 주자 전준우가 2루에서 포스 아웃됐다. 3번 손아섭은 삼진으로 돌아섰다.
한화는 2사 1루로 위기를 넘기는 듯 했다. 4번 이대호만 지나가면 될 듯 했다.
한화는 또 투수를 교체했다. 김범수를 내리고 박상원을 올렸다. 오히려 이대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이대호는 초구를 보란듯이 때려 좌중간 담장을 훌쩍 넘겨버렸다. 시즌 21호로 번즈가 역대 월간 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운 것을 축하했다. 롯데가 6월에 터뜨린 54번째 아치.
롯데가 5-2로 점수 차이를 벌렸다. 쉽게 승리를 굳힐 수 있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롯데의 뒷문은 아주 허술했다. 한화가 8회말 1점을 추가하더니 9회말 ‘큰 일’을 냈다. ‘소방수’ 손승락이 불을 끄기는 커녕 대형 방화를 일으킨 탓이다.
선두타자 5번 이성열에게 좌익선상 2루타를 맞더니 1사 후 7번 장진혁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8번 하주석을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내 한숨을 돌렸지만 9번 지성준에게 뼈아픈 끝내기 3점포를 맞았다.
‘거인’은 월간 팀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도 고개를 떨꿨다. 기뻐할 수 없었다.
이날 번즈는 시즌 17호 홈런으로 6월에만 12개 대포를 날려 팀 내 최다를 기록하고도 씁쓸하게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다.
# 6월 23일 잠실구장, ‘무관심’ 이대호의 5시즌 20홈런
이대호에겐 6월 23일이 아주 의미 있는 날이었다. 역대 7번째로 5시즌 연속 20홈런을 쳤기 때문이었다.
이대호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시즌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2008년 18개의 홈런으로 잠시 숨을 고른 뒤 2009년부터 다시 20홈런 이상을 터뜨리며 대포의 위력을 자랑했다.
2009년 28개에 이어 2010년 44개, 2011년 27개를 기록하더니 2012년 일본으로 진출했다. 오릭스에서 2년, 소프트뱅크에서 2년, 시애틀에서 1년 등 총 5년 동안 일본과 메이저리그를 거치면서 명성을 떨쳤다.
2010년에는 타격 5관왕을 차지했다. 타율 3할6푼4리로 타격왕에 오른 것은 물론 홈런 44개로 1위, 타점 133개로 1위, 안타 174개로 1위, 출루율 4할4할4리와 장타율 6할6푼7리로 모두 1위였다.
이대호는 ‘최고 타자’였다. 그리고 2017년 롯데로 돌아와서도 여전했다. 지난해 타율 3할2푼과 홈런 34개, 111타점을 올렸다. 2009년부터 4시즌 연속 20홈런과 100타점을 기록했다.
▲ 롯데 4번 이대호가 6월 23일 잠실 LG전에서 4회초 무사 1, 3루에서 김영준을 상대로 시즌 20호째 홈런을 터뜨리고 있다.
이날 롯데가 LG에게 4-2로 앞선 4회초 무사 1·2루에서 4번 이대호는 김영준을 공략해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3점 아치를 그렸다. 시즌 20호이자 통산 279호 홈런이었다. 역대 7번째 5시즌 연속 20홈런 이상을 달성했다.
이대호는 2001년 투수로 롯데에 입단했지만 곧바로 타자로 전향했다. 데뷔 2년째인 2002년 4월 26일 인천 SK전에서 2회초 선두타자로 나가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1점 아치로 프로 첫 홈런을 신고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26일 광주 KIA전에서 100홈런, 2011년 4월 3일 사직 한화전에서는 200홈런을 차례로 달성했다.
◈ 이대호 연도별 성적 (7월 1일 현재, KBO 홈페이지 캡처)
이대호는 이날 활짝 웃지 못했다. 7-2로 넉넉하게 앞서가던 4회말 무려 9점이나 내주면서 7-12로 전세가 뒤집혔고, 결국 8-18로 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용택이 역대 개인 통산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우면서 또 다른 축제의 장을 만들어 제대로 주목 받지 못했다.
# 이승엽은 역대 최다 시즌 20홈런 주인공
최다 연속 시즌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주인공은 ‘영원한 홈런타자’ 이승엽이다. 이승엽은 삼성 유니폼을 입고 ‘라이언 킹’이라 불리면서 1997년부터 2012년까지 8시즌 연속 20홈런 이상을 터뜨렸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에서 활약하느라 잠시 국내 무대를 떠나 있었지만 화끈한 장타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이승엽에 이어 5시즌 연속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양준혁(삼성), 박재홍(현대), 타이론 우즈(두산), 마해영(삼성), 최형우(KIA) 등 5명이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