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梁神)’을 넘었다. 이제 전설이다. 마침내 ‘택신(澤神)’의 시대가 열렸다.
25일 현재 개인 통산 2,321안타. LG 베테랑 타자 박용택(朴龍澤ㆍ39)이 양준혁이 갖고 있던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안타인 2,318안타를 깨고 연일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아무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다.
▲ LG 박용택이 6월23일 잠실 롯데전에서 개인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운 뒤 5회초에 앞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꽃다발을 받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새 역사를 쓴 날, 2018년 6월 23일 잠실구장
박용택이 롯데전을 맞아 3번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전날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기대했지만 롯데 선발인 왼손 투수 레일리에게 꽁꽁 묶어 2타수 무안타에 그쳐 대기록 달성을 하루 늦춘 상태였다.
이날 롯데 선발은 노경은. 2,317안타에 멈춘 채 하루를 침묵했던 박용택이 신기록 달성을 기대할 수 있는 투수였다.
롯데도 만만치 않았다. LG 선발 신정락을 상대로 1회초 1번 전준의 중전안타 등 4안타와 볼넷 1개를 묶어 2점을 먼저 뽑았다.
LG는 1회말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1사 후 2번 오지환이 우중간 안타로 포문을 열자 3번 박용택이 볼 카운트 2볼에서 3구째 노경은의 시속 142㎞ 직구를 받아쳐 오른쪽 외야 담장 위쪽을 때리는 큰 타구를 날렸다.
홈런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LG 벤치에선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다. 최종 판정은 우월 2루타. 양준혁이 갖고 있던 개인 통산 최다안타 2,318개와 타이 기록을 만들었다.
LG는 1사 2, 3루에서 4번 김현수의 몸에 맞는 공으로 만루 기회를 잡았고, 6번 이천웅의 유격수 땅볼 때 3루 주자 오지환이 홈을 밟아 1-2로 추격의 발판을 만들었다.
박용택의 방망이는 1회말 홈런성 2루타로 예열을 했다.
박용택은 1-4로 뒤진 3회말 2번째 타석에선 삼진으로 돌아섰지만 정주현의 3점 홈런으로 5-7까지추격한 4회말 1사 1, 2루에서 3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엔 2번 오지환의 타석부터 선발 노경은에 이어 등판한 왼손투수 고효준이 버티고 있었다. 초구 스트라이크, 2루 헛스윙. 볼 카운트가 불리하게 흘러갔다. 3구는 볼에 이어 4구째 시속 123㎞짜리 커브가 들어오자 날카롭게 방망이를 돌렸다. 타구는 오른쪽 파울 라인을 따라 외야 펜스까지 날아갔다. 그 사이 2루주자 이형종과 1루주자 오지환까지 모두 홈까지 내달렸다. 2타점 우익선상 2루타.
▲ LG 구단은 6월23일 박용택이 개인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우자 잠실구장 대형 전광판을 통해 대기록 달성을 팬들에게 알렸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개인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2002년 LG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입단한 이후 17시즌이자 2,017게임 만에 양준혁이 2,135경기째 이룩한 대기록을 뛰어넘는 2,319번째 안타를 터뜨렸다. 7-7로 승부의 균형을 원점으로 돌려놓은 2루타였기에 더욱 값졌다.
LG는 방망이가 폭발했다. 4회말에만 9점을 뽑는 등 초반 열세를 방망이로 화끈하게 뒤집었다. 이날 총 19안타를 몰아쳐 18-8로 역전승했다.
역사적인 대기록을 달성한 날, 박용택은 총 6타수 4안타 2타점을 기록하면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축하합니다.” 양준혁과 이대호도 함께
박용택이 신기록을 세우던 날, ‘종전 기록 보유자’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 위원이 잠실구장을 찾았다.
양준혁 위원은 4회말이 끝난 뒤 그라운드에서 진행된 축하 행사에서 박용택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꽃다발을 건네준 뒤 가벼운 포옹을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프로야구사의 개인 최다 순위에서 맨 위 자리를 내줬지만 서운함은 없었다.
오히려 박용택이 현역 생활을 오래 오래 이어가면서 3000안타까지도 달성하길 기원했다.
▲박용택이 개인 통산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우자 잠실구장에선 경기를 잠시 중단하고 축하 행사를 가졌다. 류중일 감독, '종전 기록 보유자'인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이대호 롯데 주장(왼쪽부터)이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올 시즌부터 LG 지휘봉을 잡고 새로운 ‘신바람 야구’를 이끌어가고 있는 류중일 감독도 축하 인사를 전했다. 팀의 든든한 맏형으로서, 리더로서 박용택의 존재감을 인정했다. 또 프로 출신 선배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길 다시 한 번 기원했다.
롯데는 대기록의 제물이 됐다.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펼치는 경쟁자이기 이전에 동업자로서 박용택의 기쁨 충만한 순간을 축하했다. 롯데 선수단을 대표해 주장인 이대호가 직접 박용택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박용택의 길, 꾸준함으로 만든 살아 있는 역사
박용택은 휘문고와 고려대를 거쳐 2002년 LG에서 2차 1번으로 지명해 프로에 입단했다. 새내기였던 그 해 4월 16일 인천 문학 SK전에서 우월 2루타로 프로 첫 안타를 신고했다.
그리고 2009년 9월 10일 대구 삼성전에서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6년 연속 두자리수 안타를 기록하다 2008년 부상으로 96게임에서 86개에 그쳤지만 2009년 다시금 ‘안타제조기’의 모습을 되찾았다. 2009년 박용택은 111게임에 나가 168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타율은 3할7푼2리로 타격왕에 올랐다.
박용택은 2013년 7월 26일 잠실 두산전에서 1,500안타, 2016년 8월 11일 잠실 NC전에선 양준혁, 전준호, 장성호, 이병규, 홍성흔에 이어 역대 6번째로 2,000 안타 고지를 밟았다. 박용택은 지난해까지 16시즌 동안 프로에서 활약했다. 2008년을 제외한 15시즌 동안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특히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역대 최초로 6시즌 연속 150안타 이상을 터뜨리는 금자탑을 쌓았다.
▲지난해 역대 최초로 6년 연속 150안타 이상을 기록했을 당시의 박용택.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9년 연속 타율 3할 타자로 등극하면서 양준혁(1993∼2001년), 장성호(1998∼2006년)와 똑같이 최다 연속 시즌 3할 기록을 달성했다.
올 시즌에 25일 현재 77게임에서 홈런 6개를 포함한 96개의 안타로 타율 3할1푼9리를 기록 중이다. 이런 추세로 올 시즌을 마감하면 최초로 10년 연속 3할 타율을 달성하게 된다.
박용택은 ‘영원한 3할 타자’로 가고 있다. 매 게임, 매 타석이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족적이 되고 있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sportskorea.com)
◈박용택의 연도별 타격 성적(6월25일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