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은 이미 ‘전설’이다. ‘창용불패’라 불리던 화려한 세월은 지났지만 여전히 위풍당당이다. 불혹을 넘겼지만 상대 타자들은 움찍거리곤 한다.
마침내 KBO리그 역대 최고령 세이브 기록까지 바꿔 놓았다.
임창용은 ‘최고 소방수’였다. 벤치의 부름을 받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면 어김없이 책임을 다했다. 특급 마무리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팬들이 더 잘 기억하고 있다.
▶ KIA 임창용(왼쪽)이 5월13일 대구 삼성전에서 역대 최고령 세이브를 따낸 뒤 포수 김민식과 손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이제 ‘붙박이 마무리’는 아니다. KIA의 답답한 팀 사정상 ‘임시 클로저’로 나설 뿐이다. 김기태 감독이 올 시즌 마무리로 낙점한 김세현의 부진 탓이다.
# 불혹의 세이브, 2018년 5월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 파크
KIA가 8-7로 앞선 9회말. 김기태 감독은 불펜에 대기 중인 임창용을 불렀다. 믿었던 선발 헥터를 투입하고도 3회까지 3-7로 끌려갔다. 그래도 5회부터 맹렬하게 추격전을 펼쳐 뒤집어 놓았다. 꼭 승리를 지키고 싶었다.
임창용은 첫 상대는 4번 러프.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를 던지자 러프는 어정쩡하게 방망이를 돌렸다. 3루 땅볼이었다. 정성훈이 여유 있게 잡아 1루에 던졌다. 아뿔싸, 공이 너무 높았다. 1루수 서동욱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3루수의 송구 실책으로 무사 1루의 위기를 맞았다.
삼성은 러프 대신 박찬도를 1루 주자로 기용했다.
임창용은 베테랑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흔들리지 않았다. 5번 배영섭은 투수 앞 희생 번트를 댔다. 그 사이 박찬도는 2루까지 진루했다. 6번 박한이에겐 굳이 승부할 이유가 없었다. 비어 있는 1루를 채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의도적인 볼넷으로 1사 1, 2루.
삼성은 역전 주자까지 내보냈으니 한방으로 승부를 재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7번 손주인 대신 이날 벤치에서 대기했던 힘 좋은 강민호를 대타로 내세웠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 강민호의 헛스윙으로 볼 카운트는 0-2. 3구째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바깥 낮은 스트라이크존에 꽉 차게 들어가는 시속 148km의 직구를 던졌다. 강민호는 꼼짝 못했다. 이영재 주심은 순간 두 주먹을 쥐면서 스크라이크 아웃 콜을 하려는 듯 움찍거렸다. 그러나 동작이 이어지지 않았다. 주심의 최종 결정은 볼. KIA 벤치에선 아쉬움의 탄성이 쏟아졌고, 삼성 벤치에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창용의 투구에도 아쉬움에 드러났다. 4구, 5구 모두 볼. 풀카운트가 됐다. 그래도 강민호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그 사이 2루 주자 박찬도는 3루까지 달렸다.
2사 1, 3루. KIA의 승리를 지켜내기 위해 임창용이 잡아야 할 남은 아웃 카운트는 1개.
8번 강한울이 타석에 나왔다. KIA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젊은’ 강한울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와 3구는 연속 파울. 임창용은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었다. 4구는 유인구로 볼, 5구는 다시 파울볼.
여전히 볼카운트 1-2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6구째를 던졌다. 주심의 판정은 볼이었고, 그 사이 1루 주자 박한이는 2루 도루에 성공했다. 2사 2, 3루. 안타 1개로 재역전을 내줄 수 있는 상황으로 변했다.
임창용은 듬직했다. 힘차게 7구를 던져 좌익수 플라이를 만들었다. 1이닝 동안 5명의 타자를 상대로 25개의 공을 던지면서 볼넷 1개만 내준 뒤 8-7의 승리를 지켰다. 시즌 첫 세이브, 만 41세 11개월 11일에 올 시즌 15번째로 마운드에 나가 역대 최고령 세이브를 따냈다.
KIA 최영필이 2016년 4월 1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41세 11개월 9일에 올린 ‘역대 최고령 세이브’ 위에다 새 역사를 썼다.
최연소 100세이브부터 최고령 200세이브까지
임창용은 1995년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면서 해태에 입단했다. 1998년 34세이브로 역대 최연소 구원왕에 올랐다.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앞세웠다. 특이한 움직임 때문에 ‘뱀 직구’란 별명까지 얻었다.
해태 유니폼을 입고 선발과 마무리를 두루 오갈 수 있는 ‘전천후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줬다.
▶임창용은 해태, 삼성을 거치면서 최고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구원 부문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임창용은 1999년 삼성으로 이적한다. ‘특급 소방수’가 절실한 삼성에서도 이적 첫 해 38세이브를 올린데 이어 2000년에도 3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언제든 부르면 등판한다’고 ‘애니콜’이라 불렸다.
임창용은 프로 생활 24년째다. 2008년부터는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해 2012년까지 5시즌을 활약했다. 33경기 연속 무자책 행진을 펼쳐 ‘미스터 제로’라는 또 하나의 영광스런 별명을 얻었다. 2013년엔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로 진출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6년 동안의 공백 탓에 국내 마운드가 다소 낯설었지만 임창용은 돌아왔다. 2014년부터 다시 섰다. 삼성을 거쳐 2016년부터 고향으로 돌아왔다.
임창용은 “나는 마무리 투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KIA의 전문 마무리 김세현의 부진으로 잠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셋업맨으로 올 시즌을 시작했으니 맞는 말이다. 상황에 맞춰 벤치의 지시대로 나갈 뿐이다.
▶ 임창용(왼쪽 사진 가운데 12번)이 5월15일 고척 넥센전에서 선발 양현종에 이어 마무리로 나가 2-1 승리를 지켜낸 뒤 동료들과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벤치에서 기다리던 양현종은 밤 9시26분 승리가 확정되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임창용은 지난 15일 고척 돔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시즌 2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2연속 구원 성공이다. 선발 양현종에 이어 2-1로 앞선 9회말 등판해 1이닝을 1안타와 볼넷 1개, 무실점으로 막았다. 팀과 에이스 양현종의 승리를 지켰다.
2000년 4월 14일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23세 10개월 10일 만에 올린 최연소 개인 통산 100세이브, 1998년부터 2000년까지 KBO 리그 최초 3년 연속 30세이브, 2016년 10월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 올린 포스트시즌 최고령 세이브(40세 4개월 6일), 2015년 3월 31일 수원 kt전에서 38세 9개월 27일에 따낸 개인 통산 최고령 200세이브 등 구원에 관한 숱한 기록을 남겼다.
임창용은 16일 현재 한일 통산 총 384세이브를 기록하고 있다. 해태, 삼성, KIA에서 18시즌 동안 총 256세이브를 올렸다. 오승환(277개)에 이어 역대 최다 세이브 2위다.
마운드에 서면 행복하다. 모든 것은 진행 중이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