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K'는 위대한 투수의 대명사다. 삼진을 잡아내는 노하우가 탁월하다는 의미다.
이젠 전설이 된 ‘무쇠팔’ 최동원이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바로 탈삼진 능력이다.
최동원은 1984년 롯데의 에이스로서 한 시즌 최다 탈삼진 223개를 잡아냈다. 또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1990년 5월 20일 대구 LG전에선 KBL 리그 최초로 개인 통산 '1000 K'을 달성했다. 만 31세 11개월 26일에 230게임 째 등판이었다.
선동열은 1986년 214개의 탈삼진을 뽑아내며 그 해 탈삼진 1위에 오르는 등 5차례 탈삼진왕의 영광을 누리는 동안 1988년 200개, 1991년 210개 등 3번이나 '200K' 이상을 기록했다. 최동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188번째 등판이었던 1990년 8월 16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태평양과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만 27세 7개월 6일 만에 ‘1000 K' 고지를 밟았다. 선동열의 개인 통산 탈삼진은 1698개로 송진우(2048개), 이강철(1749개)에 이어 역대 3위다.
아무튼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한 닥터 K'로 각인된 투수는 누가 뭐래도 최동원과 선동열이다.
▶ KBO리그 역대 개인 통산 탈삼진 1위인 송진우, 2위 이강철, 3위 선동열(왼쪽부터).
2018 KBO 리그의 초반 레이스가 뜨겁다. 40경기를 넘어서면서 중하위권의 순위 변동이 흥미진진하다.
한화 배영수와 KIA 임창용은 베테랑의 힘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등판할 때마다 녹슬지 않은 ‘닥터 K'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각각 역대 6번째, 7번째 개인 통산 1400탈삼진 고지를 넘어서면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 역대 6번째와 7번째로 개인 통산 1400 탈삼진 고지를 넘어선 배영수(위쪽)와 임창용.
# 배영수, 2018년 5월 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한화 선발 배영수는 출발이 상큼했다. 1회초 1번 임훈에게 ‘K’를 그려주면서 ‘삼진 사냥’을 시작했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 스트라이크. 느낌이 좋았다. 결국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도 스트라이크를 던져 까다로운 왼손 타자 임훈을 돌려세웠다.
전날까지 개인 통산 1396개의 삼진을 기록했던 배영수의 1400 탈삼진 달성을 예고한 셈이었다.
배영수는 1회초 2사 후 3번 박용택에게 우전 안타를 맞았다. 2사 1루, 타석엔 4번 김현수. 신경이 곤두서는 타자다. 초구 스트라이크, 2구와 3구는 연속 볼이었다. 4구는 스트라이크. 볼카운트 2-2에서 회심의 5구를 던졌다. 그러나 파울볼. 배영수는 도망가지 않았다. 혼신의 힘을 실어 6구를 던져 김현수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1회초에만 2개의 삼진을 보태 개인 통산 탈삼진은 1398개. ‘1400 고지’까지 2개 남겨뒀다.
배영수는 1-0으로 앞선 3회초 선두타자 9번 박지규를 볼카운트 2-2에서 삼진으로 솎아냈다. 그리고 계속된 2사 1루에서 다시 3번 박용택과 맞붙었다. 1회초 안타를 내준 기억이 또렷했다. ‘1400 탈삼진’까지 딱 1개. 신중했다. 초구는 볼. 박용택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2구부터 4구까지 연거푸 3개의 공을 파울 타구로 만들었다. 볼카운트 2-1에서 6구째, 배영수도 작심하고 던졌다. 박용택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기록지에 또 하나의 ‘K'가 그렸다.
개인 통산 1400 탈삼진의 제물이 바로 박용택이었다.
마침내 배영수가 송진우, 이강철, 선동열, 정민철, 박명환에 이어 역대 6번째 '1400 K'를 기록했다. 경북고를 졸업한 뒤 2000년부터 사자 우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지 18년 만에 대기록을 세웠다.
▶ 한화 배영수는 5월4일 대전 LG전에서 개인 통산 1400 탈삼진을 달성했다.
이날 배영수는 3-0으로 앞선 6회초 선두타자 2번 오지환에게 우월 2루타를 맞고 3번 박용택의 타석부터 마운드를 이태양에게 넘겼다.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이태양이 3번 박용택에게 우월 2점 홈런을 맞은 데 이어 3-2로 앞선 1사 후 다시 5번 채은성에게 동점 좌중월 1점포를 내줘 배영수의 승리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배영수의 공식 기록은 5이닝 5안타와 볼넷 1개, 삼진 4개, 1실점.
한화는 선발 배영수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3-3 동점이던 7회말 대거 4점을 뽑아 7-3으로 이겼다.
# 임창용, 2018년 5월 10일 광주 KIA 챔피언스 필드
올 시즌 임창용은 KIA 불펜의 키 플레이어다. 팀이 필요로 하는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자세로 등판을 이어가고 있다. 5월 10일 두산과의 홈경기를 맞아 여느 때처럼 불펜에서 대기했다. 벤치의 부름만 있으면 언제든 나갈 준비를 했다. KIA가 두산에게 5-4로 앞선 8회초 1사 1, 3루. 김기태 감독이 임창용을 선택했다. 선발 팻딘에 이어 5-3으로 앞선 7회초 2사 1루에서 김윤동을 투입해 두산의 추격 의지를 꺾는 듯 했지만 8회초 1사후 2번 허경민, 3번 박건우, 4번 김재환에게 연거푸 3안타를 맞고 5-4까지 쫓기면서 흔들리자 베테랑 임창용으로 급한 불을 끄려 했다.
임창용은 벤치의 기대에 부응했다. 첫 타자인 5번 양의지를 보란 듯이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역대 7번째인 개인 통산 1400번째 탈삼진이었다.
▶ KIA는 5월10일 임창용이 역대 7번째로 개인 통산 1400K를 달성하자 챔피언스 필드 전광판에 축하 영상을 올려 팬들과 기쁨을 같이 했다.
이날 임창용은 양의지를 삼진으로 돌려 세운 여세를 몰아 6번 오재일까지 연속 삼진으로 잡아 더 이상의 실점 없이 이닝을 매조 짓더니 9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7번 대타 류지혁도 ‘K'자와 함께 솎아냈다. 3타자 연속 K.
그러나 5-4로 앞선 9회초 1사 후 7번 오재원에게 통한의 동점 좌중월 1점포를 맞아 승부를 연장으로 넘겨야 했다. 5-5 동점. 임창용도, 벤치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은 ‘최고참 투수’ 임창용에게 믿음을 보냈고, 임창용 역시 담담하게 다음 타자들을 처리했다.
임창용은 연장 10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무사 1루에서 3번 박건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등 더 이상의 실점하지 않았다.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5-5 동점이던 연장 11회초 마운드를 이민우에게 넘겼다.
이날 임창용은 2.1이닝 동안 11명의 타자를 상대로 삼진 5개를 솎아내면서 홈런 1개를 포함한 2안타와 볼넷 1개로 1실점했다. 동점을 허용한 탓에 홀드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나무랄 데 없는 피칭이었다.
통산 탈삼진은 1400개를 넘어 1404개가 됐다.
임창용은 1995년 광주 진흥고를 졸업하고 해태에 입단한 뒤 삼성을 거쳐 2016년부터 다시 고향 팀 KIA로 돌아왔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하느라 생긴 6년 동안의 국내 공백을 제외하고 18시즌 만에 금자탑을 쌓았다.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임창용의 빠른 공은 ‘뱀 직구’라 불렸다. 빠르기는 물론 ‘잠수함 투수’ 특유의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임창용은 1997년 '120 K'로 개인 첫 한 시즌 세 자릿수 탈삼진을 달성했다. 1998년과 1999년은 2년 연속으로 141탈삼진, 2001년과 2002년에도 136탈삼진과 160탈삼진을 각각 기록하면서 ‘닥터 K'의 명성을 쌓았다.
선발과 마무리, 중간까지 두루 담당하면서 일궈낸 기록인지라 더욱 값진 의미를 지닌다.
ML의 '닥터 K' 놀란 라이언, 통산 5714 탈삼진
메이저리그 최고의 ‘닥터 K’는 놀란 라이언이다. 1993년 9월 22일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오를 때까지 27년 동안 5386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5714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감히 깨기 어려운 메이저리그 역대 1위다.
놀란 라이언은 40대에도 200개 이상의 탈삼진을 솎아낼 정도로 힘 있고 빠른 공을 던졌다. 47세에 치른 은퇴 경기에서도 100마일에 육박하는 직구를 던질 정도였다.
메이저리그 역대 탈삼진 2위는 랜디 존슨으로 개인 통산 4875개를 기록했다. 놀란 라이언과는 839개나 차이가 난다. 3위는 로저 클레멘스로 통산 4672개.
통산 성적에서 금자탑을 쌓으면 정작 선수들은 ‘세월’이 만든 것이라며 무덤덤하다. 배영수나 임창용도 마찬가지다. 최동원, 선동열, 송진우, 이강철, 정민철 등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세월’에 지지 않고, 10년 이상 꾸준함으로 만든 것이니 더없이 값진 기록임이 분명하다. 배영수와 임창용은 여전히 녹색 그라운드에 서있다. 위대한 기록을 만들고 있다. (이창호 전문기자 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