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승’, 위대한 기록’이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모두 29명만이 야구사에 이름을 남겼다.
첫 100승은 ‘삼성의 레전드’ 김시진이 개인 통산 186번째 등판이었던 1987년 10월 3일 잠실 OB전에서 달성했다. '역대 최소 경기 100승 투수'라는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한화 송진우는 1997년 9월 20일 인천 현대전에서 왼손 투수 최초로 100승 고지에 올라섰다. 한화 정민철도 1999년 6월 30일 대전 해태전에서 최연소 100승 투수로 등록했다. 27세 3개월 2일만에 대기록을 남겼다.
이제 ‘kt의 희망’ 더스틴 니퍼트(37)가 또 하나의 역사를 쓰기 위해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외국인 최초의 개인 통산 100승 투수로 등록할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 개인 통산 100승은 '레전드 투수의 상징'이다. kt 니퍼트가 외국인 첫 100승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왼쪽부터 첫 100승 투수인 김시진, 첫 왼손 투수 100승을 달성한 송진우, 최연소 100승 투수 정민철, 외국인 첫 100승 초읽기에 들어간 kt 니퍼트.
# 2018년 4월 29일 수원구장
kt가 디펜딩 챔피언 KIA와 맞붙었다. kt 선발은 더스틴 니퍼트, KIA는 임기영을 선발로 내세웠다. 스프링캠프에서 가벼운 어깨 부상으로 시범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개막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던 니퍼트가 앞선 4경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관심거리였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1회를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특유의 경기 운영 능력을 보여주면서 6회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4-0으로 앞선 7회초 선두타자 4번 최형우에게 중월 2루타를 내준 뒤 1사 후 6번 황윤호에게 중전 적시타를 맞아 1실점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니퍼트는 8회에도 마운드로 나갔다. 선두타자 9번 김선빈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1번 버나디나에게 우전안타, 2번 이명기에게 유격수 쪽 내야안타를 연속 허용하자 김진욱 감독이 결단을 내렸다. 이상화로 투수를 교체했다. 이미 투구수가 100개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구원 투수 이상화는 제구가 불안했다. 3번 김주찬과 4번 최형우에게 연속 볼넷, 5번 나지완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는 바람에 8회에만 2점을 더 내줬다. 니퍼트가 내보낸 주자들이 모두 홈을 밟았다.
결국 니퍼트의 자책점이 3점으로 늘었다. 하지만 4-3으로 앞선 8회말 유한준이 쐐기 1점포를 날려 니퍼트의 시즌 2승이자 개인 통산 96승을 지원했다.
이날 니퍼트는 7.1이닝 동안 29명의 타자를 상대로 107개의 공을 던져 삼진 6개를 솎아내면서 7안타 3실점을 기록했다. 스트라이크가 73개, 4사구는 단 1개도 없었다.
가장 빠른 직구는 시속 153㎞. 총 107개 중 직구는 65개. 체인지업 20개와 슬라이더 16개, 커브 6개를 섞어가면서 KIA 타자들의 집중타를 피해갔다.
김진욱 감독은 KIA에게 5-3으로 승리한 뒤 “니퍼트가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이다. 구속도 거의 다 올라왔다. 전성기 때와 비교할 수 없지만 구위가 올라오니 경기를 운영하는 게 노련하다”고 말했다.
니퍼트가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면서 외국인 첫 개인 통산 100승 달성을 위해 청신호를 밝혔다.
니퍼트는 올 시즌 첫 등판이었던 4월8일 수원 한화전에서 고영표, 심재민, 이상화(이상 7회)에 이어 8-8 동점이던 8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던지면서 몸 상태를 점검했다. 총 14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첫 상대인 7번 최재훈에게 중전안타, 8번 최진행에게 좌전안타를 연거푸 허용했지만 9번 정경운을 병살타로 처리한 뒤 1번 이용규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낸 뒤 9회부터 마운드를 엄상백에게 넘겼다. 2안타 무실점. 선발 복귀를 알렸다.
4월 11일 NC전에선 올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그러나 투구 내용은 불안했다. 5이닝 동안 홈런 3개를 포함한 6안타와 볼넷 1개로 4실점했다. 그리고 4월 17일 SK전에선 4.1이닝 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한 10안타와 볼넷 2개, 몸에 맞는 공 1개 등으로 5실점하며 첫 패전의 멍에를 썼다.
스멀스멀 ‘니퍼트 한계론’이 고개를 드는 듯 했다. 그러나 니퍼트는 스스로 위기를 극복했다. 2011년부터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에 진출해 지난해까지 통산 94승을 올린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보여줬다.
▶ 니퍼트는 2011년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 무대에 데뷔했다. 7년 동안 두산의 에이스로서 제 몫을 다했지만 올해는 kt와 손을 잡았다. 두산에서 94승을 올린데 이어 kt에서 2승을 올리고 있다. 5월4일 현재 100승 달성까지 4승을 남겨두고 있다.
니퍼트는 최고의 ‘한국형’ 외국인 투수
니퍼트는 전형적인 ‘한국형 외국인 투수’다. KBO리그를 잘 알고, 잘 적응했다. 이에 걸 맞는 기록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 두산 팬들은 니퍼트와 함께 기쁨을 함께 했다. ‘니느님’이라 부르며 니퍼트의 활약과 성적을 칭송했다.
2m3의 큰 키에서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내리 꽂는다. 날카로운 슬라이더는 때론 좌우로, 때론 위아래로 변하면서 타자들을 꽁꽁 묶어 놓는다.
니퍼트는 2011년 두산과 계약금 10만 달러, 연봉 20만 달러로 계약했다. 입단 첫 해, 4월 2일 ‘잠실 라이벌’ LG와의 개막전에 선발로 나가 첫 승을 신고하면서 롱런을 예고했다. 니퍼트는 2011년 19차례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가장 듬직한 선발임을 입증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 7년 동안 두산의 에이스로서 제 몫을 다했다.
2016년에는 28게임에 나가 22승3패와 평균자책점 2.95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해’를 만들었다. 페넌트레이스 MVP의 영광을 안았다. 평균자책점 1위, 다승 1위, 승률 1위로 ‘투수 3관왕’을 차지했다. 골든글러브도 니퍼트의 몫이었다.
니퍼트는 지난해 37게임에서 14승8패, 평균자책점 4.06. ‘니퍼트가 내리막에 들어섰다’고 판단한 탓일까. 두산은 올 시즌을 앞두고 선뜻 니퍼트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대신 롯데와의 재계약이 결렬된 린드블럼을 선택했다.
결국 니퍼트는 두산을 떠났다. kt가 총액 100만 달러로 손을 내밀었다.
이제 니퍼트는 ‘kt맨’이다. ‘두산맨’에서 ‘kt맨’으로 변신해 ‘통산 100승’이란 대기록을 한국야구사에 남겨둘 시간이 다가왔다.
‘레전드의 상징’ 100승, 양현종과 김광현은 ‘당당한’ 현역
산술적으로 100승을 달성하려면 해마다 10승씩, 10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해야 한다. 철저한 자기 관리 없이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기록이다.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한 투수 중 올 시즌에도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고 있는 선수는 총 7명이다.
KIA 임창용은 2007년 4월 8일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두산전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임창용은 선발과 마무리를 오간 ‘전천후’였다. 선발로 47승, 구원으로 53승을 각각 올렸다. 국내 무대에서 정점을 찍은 임창용은 일본, 미국을 거치고 돌아와 지금은 KIA의 불펜에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SK 김광현(왼쪽)과 KIA 양현종은 100승을 달성한 현역 중 대표적인 왼손 투수다. 최고의 반열에 오른 두 투수는 최상의 기량으로 올 시즌을 이끌어가고 있다.
현역 100승 투수 중 빼어난 구위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투수는 KIA 양현종과 SK 김광현이 대표적이다.
김광현은 2016년 4월 2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NC전에서 통산 100승을 달성하면서 ‘최고 투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돌아와 올 시즌 당당하게 건재를 알리고 있다.
양현종은 지난해 최고의 왼손 투수로 영광을 독차지했다. 7월 13일 광주 NC전에서 개인 통산 100승까지 달성했다.
KIA의 우승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페넌트레이스에서 31게임에 나가 20승 6패로 다승왕에 올랐다. 평균자책점은 3.44. 페넌트레이스 MVP에 이어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골든글러브도 안았다. 최고의 해를 보냈다.
양현종과 김광현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투수다. 개인 통산 100승의 의미를 마운드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