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은 떠난다. 박병호는 돌아온다. ‘라이언 킹’은 ‘영원한 국민타자’로 남는다. ‘박뱅’은 새로운 신화에 도전한다.
이승엽과 박병호는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똑같이 두 차례나 50홈런 이상을 기록한 주인공이다. 닮은 듯 다른 스타일로 아무나 넘볼 수 없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제 이승엽의 모든 홈런 기록은 역사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박병호는 진행형이다. 어떤 기록을 만들어낼지 팬들의 관심은 벌써 2018시즌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승엽
박병호
이승엽은 1995년 경북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뒤 2017년까지 불멸의 타자로서 외길을 걸어왔다. 특히 홈런 기록은 모두 ‘이승엽’이 새롭게 썼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이승엽이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 타자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이 바로 ‘시즌 50홈런’이다.
‘라이언 킹’은 ‘홈런 킹’, KBO 첫 50홈런 이상을 쏘다
이승엽은 1999년 대망의 시즌 50홈런을 최초로 넘어섰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8년째를 맞아 삼성의 간판타자로 자리매김한 이승엽이 132경기에 모두 출전하면서 54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1999년 9월2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열린 LG전 5회말 2사 1, 2루에서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LG 투수는 왼손 방동민,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가 몸쪽으로 들어오자 이승엽의 방망이가 날카롭게 돌아갔다. 포물선을 그린 하얀 공은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좌월 3점 홈런, 공식 비거리 105m. 122경기 만에 사상 첫 50홈런을 달성했다. 10경기가 남아 있으니 아시아 신기록(55개)까지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이승엽의 방망이가 주춤했다.
시즌 129경기 째였던 9월30일 이승엽은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해태전에서 강태원을 상대로 시즌 54호 째 좌월 2점 아치를 그렸다. 거기까지였다. 3경기에 더 출전했지만 아시아 기록에 미치지 못했다. 아쉬웠다. 한국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50홈런 이상을 기록한 것에 만족했다.
1999년 이승엽은 경기당 0.409개의 홈런을 기록한 셈이다. 54개 아치의 거리를 모두 합하면 6,400m, 1개당 118.52m를 날아가면서 팬들에게 시원한 쾌감을 안겼다.
‘아시아 최고의 거포’ 이승엽, 홈런 신화를 만들다
이승엽의 도전은 계속된다. 2003년 위대한 기록을 만든다. 56개의 아치를 그려 KBO 역대 시즌 최다 홈런이자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2003년 이승엽의 홈런 행진은 순풍에 돛을 단 모양새였다. 4월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박명환을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면서 상큼한 출발을 알렸다. 1999년 자신이 기록한 최소 경기 30홈런도 13경기나 단축한 56경기 만에 달성했다. 홈런 신기록을 향한 청신호를 밝혔다. 50홈런도 1999년보다 빨리 넘어섰다. 9월5일 수원 현대전에서 이상열을 상대로 중월 1점포를 날려 108경기 만에 또 하나의 대기록을 만들었다. 삼성은 이날까지 110경기를 치렀다. 23경기가 남았으니 3.8경기 당 홈런 1개씩만 터뜨리면 아시아 신기록 달성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승엽의 방망이에 불이 붙지 않았다. 오히려 식어가는 추세였다. 9월24일 광주 KIA전까지 16경기에서 4개의 아치를 그리는데 그쳤다. 또 아시아 신기록은 물 건너가나 싶었지만 이승엽은 하루 뒤인 25일 광주 KIA전에서 김진우에게 아시아 타이 기록인 시즌 55호 째 우월 2점포를 뽑아냈다. 아시아 신기록에 1개 차로 바짝 다가섰다. 삼성이 경기하는 야구장 외야에 잠자리채가 등장했다. 아시아 신기록이 되는 홈런볼을 잡기 위해서였다.
상대 투수들의 견제가 갈수록 심해졌다. 이승엽도 심리적으로 쫓기는 듯 했다. 또 5경기를 그냥 보냈다. 9월이 지나갔고, 10월이 왔다. 결국 역사적인 아시아 신기록이 달성된 날은 10월2일, 대구 시민구장이었다. 상대 팀은 롯데. 투수는 이정민이었다. 2회말 첫 타자로 나간 이승엽은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 정확하게 받아쳐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겨 버렸다. 시즌 56호 중월 1점 홈런. 시즌 131경기 출전에서 대망의 기록을 완성했다. 팬들의 머리 속에 ‘이승엽은 위대한 홈런 타자’라는 문장이 새겨졌다.
2003년 이승엽은 현대 심정수와 홈런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늘 이승엽이 살짝 앞서 나갔다. 그 해 심정수 역시 개인 통산 처음으로 50홈런을 넘어 53개의 아치를 그려내는 괴력을 보였다.
이승엽은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면서 경기당 0.427개의 홈런을 터뜨린 셈이다. 총 비거리는 5,975m, 1개당 106.70m. 1999년보다 비거리는 다소 줄었지만 경기당 홈런수는 높아졌다. 테크닉이 절정에 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04년 이승엽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 정벌’에 나선다. 2004년 지바 롯데에 입단한 뒤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1년 오릭스 버펄로스를 거쳤다.
이승엽은 2012년 8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접고 삼성으로 돌아온다. 늘 잊지 못할 기록을 남기면서 ‘금위환향’했다.
2017년 삼성 이승엽
이승엽의 아시아 신기록은 2013년 깨졌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외국인 선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무시무시한 힘으로 60홈런을 터뜨렸다.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은 73개. 200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리 본즈가 아무도 깰 수 없는 세계 기록을 세웠다.
‘장사의 꿈’은 홈런왕, 다시 50홈런을 위하여
박병호는 이승엽의 대를 잇는 홈런 타자다. 성남고를 졸업하고 2005년 LG에 입단했지만 오랜 시간 그저 ‘진흙 속의 진주’였다. 성남고 때 2경기에 걸쳐 고교 최초의 4연타석 홈런을 날리는 등 장타자로서 잠재력을 보였지만 2011년 7월31일 넥센으로 트레이드될 때까지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5년 동안의 LG 시절에 기록한 총 홈런은 고작 25개.
그런 박병호였지만 넥센 유니폼을 입고 김시진 감독이 4번 타자로서 절대적인 믿음을 심어주자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적 이후 51경기에서 12개의 아치를 그리면서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박병호는 2012년부터 물 오른 힘 자랑에 나선다. 133경기에 나가 개인 통산 처음으로 31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50홈런을 위한 전주곡이었다. 2013년에 다시 37개의 아치를 그렸다.
그리고 2014년 마침내 대망의 50홈런을 넘어섰다. 128경기에 모두 출전하면서 52개를 기록했다. 박병호는 힘이 장사다. 총 비거리가 6,415m, 1개당 평균 123.37m를 날아갔다. 이승엽보다 5~6m 이상 멀리 날리는 파워를 모두가 인정했다.
박병호는 2015년에도 또 한번 50홈런 고지를 넘어 이승엽에 이어 두 번째 2차례 50홈런을 쏘아올린 역사의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2015년 10월2일 목동 롯데전에서 5회말 시즌 53호째 아치를 그렸다. 1사 2, 3루에서 배장호의 공을 힘차게 때려 가운데 담장 너머 백스크린을 향해 날렸다. 비거리가 무려 140m. 그 해에 터진 총 53개의 아치는 총 6,565m , 평균 123.87m를 날아갔다.
2015년 넥센 박병호
박병호는 힘이 아주 좋은 타자다. 메이저리그에서 탐낸 이유다. 박병호는 2016년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의 벽을 실감했다. 62경기에서 홈런 12개, 타율은 1할9푼1리에 그쳤다. 결국 2017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박병호는 유턴을 결심했다. 넥센으로 돌아와 2018년을 맞는다.
박병호는 아직 젊다. 메이저리그의 뼈아픈 경험이 오히려 KBO리그에선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새로운 홈런 신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