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석에 들어가긴 전 발로 흙을 고르고, 손에 끼고 있는 장갑 벨크로를 떼었다가 붙이고 난 후 제자리에서 2회 점프하며 양 발을 부딪친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헬멧을 벗어 얼굴 부근을 2번 쓸어 올린 뒤 다시 착용한 후에 배팅 박스에 두 발을 폭넓게 벌리고 고정시키며, 왼손으로 왼쪽 허벅지를 탁 치고 야구배트로 바닥에 직선을 그으며 연습 스윙을 한 번 하고 드디어 타석에 들어선다. 이 동작은 국내 프로야구 박한이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반드시 행하는 의식 같은 반복된 동작이다. 혹자는 시간을 너무 보낸다는 이유로 부정적 시각을 표명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 동작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이 이와 같이 자신만의 고유의 특정 준비동작을 반복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루틴(routine)'이라고 한다.
루틴의 정석 박한이 선수의 모습.
루틴(routine)은 특정한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하는 일련의 습관화된 행동이나 의식, 심리적 과정을 의미한다.
선수들마다 동작은 다르지만,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일련의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 선수에게 신체적, 정신적 안정감을 주거나 집중력을 강화하고, 갑작스레 변화는 분위기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일종의 최면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박한이 선수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각자만의 특유한 루틴을 가지고 있는데, 재미있는 국내, 외 선수들의 사례를 살펴보자.
루틴을 실천하며 꾸준함을 가지는 안치홍 선수.
국내 프로야구 안치홍 선수는 타격 전 야구 방망이를 무한대(∞) 모양으로 배트를 돌리는 습관이 있다. 이와 유사한 모습은 MLB 보스턴 레드삭스팀에서 은퇴한 노마 가르시아파라 선수가 있는데, 그는 장갑 벨크로를 떼었다 붙였다부터 시작해 배트로 땅을 콕 찍고, 연속으로 배트를 4-5회 돌리는 등의 루틴을 가지고 있다. 이런 동작 말고도 시간에 대한 사례도 있는데 한화 이글스의 이태양 선수의 경우는 항상 일정한 시간에 훈련을 시작하고, 선발 등판 시에는 정각 10시에 일어나 방청소를 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이런 습관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 선수도 있는데, 항상 경기 시작 7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이유를 물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공통적 대답이 있다.
루틴을 실천하며 세계적인 골퍼가 된 타이거의 우즈의 모습.
이 밖에도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경기 전 스타팅 블록에 올라가 양 팔을 크게 펼쳤다가 접으면서 자신의 몸을 감싸는 행동을 한다. 테니스의 전설인 라파엘 나달은 테니스 코트 안에서만 적어도 19개의 징크스와 루틴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항상 자신의 의자 앞에 두 물병을 두는데 상표가 코트를 향하게 배치하고 물과 회복 음료가 담긴 물병을 빈틈없이 붙여서 일렬로 가지런히 놓는다. 축구에서도 호날두 선수는 프리킥 모션이 독특하기로 유명하죠. 그의 루틴을 살펴보면 공을 내려놓고, 뒤로 크게 5걸음 물러난 후에 뒤로 물러난 다음 각도에 따라서 약간 방향을 바꾸거나 하면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서는 골대를 노려본다.
루틴으로 유명한 라파엘 나달 선수의 모습.
루틴(routine)과 유사한 의미로 '징크스(jinx)'가 있다.
징크스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반해, 루틴은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이다. 은퇴한 국내 농구 전설의 서장훈 선수 역시 현재 삶의 강박증은 선수 시절 승부욕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유투를 넣을 때 공을 몇 차례 튕긴다는 것을 정해 놓고, 신발 끈도 왼쪽부터 맨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과거 루틴에 대해 얘기했었다. 성공하는 사람에겐 그만의 '루틴(routine)'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명상과 일기가 매일 빠지지 않고 하는 루틴이 있고, 주식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과 그의 파트너 찰리 멍거는 매일 아침 서너 종의 신문을 꼼꼼히 읽는 것으로 하루의 투자를 시작한다고 한다.
선수시절 루틴의 습관화로 오랜동안 성공적인 현역 생활을 했던 서장훈 선수의 모습.
이처럼 루틴은 스포츠 선수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특히 스포츠 선수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스포츠 자체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의 해소와 자기만의 의식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자신감의 심리학 용어)을 높여 성공적인 플레이를 기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 팬들도 이러한 선수들의 루틴을 이해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특유의 동작에 대한 이유를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이는 스포츠를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 내고,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작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우리도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일상에서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한 하나의 의식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한다. (김진국 전문기자/navyj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