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
극장에서 해고된 후 아들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 실패한 판수.
하필 면접 보러 간 조선어학회 대표가 가방 주인 정환이다. 사전 만드는데 전과자에다 까막눈이라니! 그러나 판수를 반기는 회원들에 밀려 정환은 읽고 쓰기를 떼는 조건으로 그를 받아들인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나 싶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고, 정환 또한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우리’의 소중함에 눈뜬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바짝 조여오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말모이’를 끝내야 하는데…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 말과 마음이 모여 사전이 되다. (영화 ‘말모이’ 줄거리)
영화 '말모이' 포스터(사진_프레인글로벌)
이렇듯 영화 ‘말모이’는 일제 강점기 시절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의 말을 모아 우리의 문화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그런데 자유롭게 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잘못된 용어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쓰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특히 스포츠 현장에서 쓰고 있는 용어들의 경우 외국에서 무분별하게 도입되어 쓰거나 잘못 와전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아 용어 순화가 필요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인기 있는 야구 경기만 해도 그런 경우가 많다. 포볼(four ball, 四球), 데드볼(dead ball), 랑데뷰 홈런(rendezvous homerun), 삼진(三振), 방어율(防禦率), 싸이클링 히트(cycling hit) 등 야구팬이라면 모두 익숙한 용어들이 사실은 정확한 용어들이 아닌 와전된 용어들이다. 포볼(four ball, 四球)은 볼넷이나 base on balls로, 데드볼(dead ball)은 몸 맞은 공이나 Hit by pitched ball로, 랑데뷰 홈런(rendezvous homerun)은 연속타자 홈런이나 back to back homerun으로, 삼진(三振)은 strike out으로, 방어율(防禦率)은 평균 자책점이나 ERA(earned run average)로, 싸이클링 히트(cycling hit)는 Hit for the cycle이 정확한 용어이다.
5월 29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kt 위즈 경기 5회초 1사 1,2루에서 kt 로하스가 좌전 2루타를 치고 있다. 로하스는 2루타를 치며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실제보도자료)
물론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종목의 용어들이 순화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오랫동안 익숙한 단어들이 생각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특히 스포츠 중계를 들으면 캐스터, 해설자 할 것 없이 급작스러운 상황을 설명하는 와중에 불필요한 외래어나 부적합한 표현 또는 심지어 은어까지도 쓰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대부분 종목에서 처음 선수들이 선발 출전할 때 스타팅 라인업(starting line-up)이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굳이 선발선수명단이라는 우리말이 있음에도 익숙한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축구 해설에서 종종 나타나는 오버래핑(overlapping)은 수비수가 공격 진영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굳이 외래어를 쓸 이유는 없다. 아울러 선수들끼리 눈을 마주쳐 서로의 약속된 플레이를 진행해 갈 때 아이 컨택(eye contact)이란 표현을 쓰는 것도 불필요한 외래어 중계 사례이다. 일상생활에서 소소하게 쓰이는 표현 이른바 ‘대박’이란 용어 역시 아주 좋은 일이나 크게 흥행한다는 식의 표현으로 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강팀끼리의 맞대결을 흔히 진검승부라고 표현하는데, 이 역시도 일본식 표현으로 진정한 승부 정도의 순화된 표현이 적절하다.
14일 오후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2018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올스타전에 앞서 KIA 김기태 감독이 라인업에 나서고 있다.(실제 보도자료)
또한 스포츠 중계가 아니더라도 자주 쓰는 용어들로 파이팅, 전지훈련, 시합, 계주, 기라성, 고참, 입장 등의 용어는 우리말이 아니다. 최근 한국체육기자연맹 주관의 바람직한 스포츠 용어 정착을 위한 일환으로 스포츠미디어 포럼을 개최하여 이런 관행적 용어들을 순화하여 우리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바람직한 용어의 정착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파이팅은 ‘으랏차차’나 ‘아자아자’로, 전지훈련은 ‘현지훈련’으로, 시합은 ‘경기’로, 계주는 ‘이어달리기’로, 기라성은 ‘쟁쟁한’으로, 고참은 ‘선임’으로, 입장은 ‘처지’ 등으로 순화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생활스포츠인 당구의 경우 많은 기술적 용어들이 일본어로 표현되고 있어 가장 심각한 종목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다마(공), 다이(당구대)는 물론, 다대, 오마오시, 우라, 학구, 히네루, 히끼, 오시, 겐세이 등의 용어가 당구장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다대는 ‘길게 치기’, 오마오시는 ‘앞 돌리기’, 우라는 ‘뒤돌려치기’, 학구는 ‘옆 돌리기’, 히네루는 ‘회전’, 히끼는 ‘끌어치기’, 오시는 ‘밀어치기’, 겐세이는 ‘방해하기’ 등의 용어를 이제는 정착시켜 순 우리말의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2019 오키나와 전지훈련 중인 삼성라이온즈(실제 보도자료)
한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언어라 평가받고 있다. 또한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소중한 우리의 말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언어는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기호가 아닌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는 문화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시련 속에서도 어렵게 지켜온 우리의 소중한 말들을 우리가 지켜야 또 후손들이 그 정체성을 잃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영화의 내용 중에 조선어학회가 어렵게 모아놓은 전국의 사투리 용어 원본은 실제 일제에 무단으로 빼앗겼다가 해방 후 기적적으로 서울역의 창고에서 발견되어 소중한 우리의 말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정확한 우리의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고, 스포츠 현장에서도 잘못된 용어들을 찾아내서 우리의 소중한 말로 순화하여 정착시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 ‘말모이’의 명대사 중에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스포츠 용어 바로 쓰기를 특정 단체의 노력만이 아닌 전 체육인의 동참을 기대해 본다. (김진국 전문기자/navyj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