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서울에서 태어난 엄복동은 1910년 전국 자전거 경기 대회에서 우승 하면서 이미 10대 때부터 자전거왕의 자질을 갖췄다. 최근 자전거왕 엄복동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개봉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스포츠를 통해 민족의 혼을 지키고자 했던 많은 스포츠 영웅들이 있었지만, 대표적인 스포츠 영웅 몇 분을 빼고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개봉 소식은 참으로 반갑고, 스포츠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민족의 스포츠 영웅을 소재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엄복동 선생의 이야기를 잠시 들려주고자 한다.
개봉예정작 자전차왕 엄복동의 영화 포스터
엄복동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자전거 왕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자전거 선수들은 자전거 점포의 소유주나 직원이었는데, 그는 평택에 일미상회라는 자전거 점포의 직원이었으며 그곳에서 자전거를 배웠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평택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였다고 전해지니 자전거 왕으로서의 위엄이 느껴진다. 본격적인 선수생활은 1913년 4월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 참가하면서 부터였다.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사가 서울 용산에 위치한 연병장에서 개최한 이 대회는 전국 규모의 대회로 당시 10만 명의 관객이 운집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낡은 자전거를 타고 나와 우승을 하면서 이후 수많은 자전거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된다.
엄복동 선생의 위대한 업적을 다룬 영화 포스터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은 전국적으로 애국 계몽운동이 한창 일어나던 시절 우민정책(愚民政策)의 일환으로 당시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고자 엄복동의 콧대를 무너뜨리고자 일본의 자전거 고수 모리 다카히로를 초청하여 경성시민대운동회의 자전거 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결과는 엄복동의 완승으로 끝났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일본인들은 엄복동을 구타하기 시작했고, 이를 보다 참지 못한 일반 군중들도 달려들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결국 일본 경관들에 의해 군중들은 해체되고 대회를 마친 일화가 있었다. 이후에도 장충단대회, 마산, 상주, 전국운수조합대회 등 각종 자전거대회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1932년 당시 41세의 나이로 전조선 남녀 자전거대회 1만 미터 경기에서도 우승을 하면서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
엄복동 선생의 역할을 맡은 배우 정지훈의 영화 속 열연 모습
엄복동 선생의 업적은 단순히 자전거 대회 우승에 있는 게 아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한(恨)을 달래준 스포츠 영웅이었기 때문에 그 업적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서 우리 후손들은 그의 애국심과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국가의 자긍심을 올려준 영웅으로 칭호를 한다. 그러나 엄복동 선생 역시 자전거로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널리 알렸고, 암울한 시대의 희망이 되었던 업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 영웅이었음을 알리고자 한다. 또한 가난한 삶 속에서 일본 국적으로의 출전 회유에도 불구하고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으로 나라 잃은 울분을 희망의 찬가로 바꾸어 준 그의 끈기는 후대가 길이 간직해야 할 신념이 아닐까 한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종합운동장에 설치된 엄복동 선생의 동상
최근 엄복동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자 사이클인들이 엄복동기념재단을 창립하였다. 기념재단은 다소 늦은 시기에 재단이 설립되었지만, 당대 엄복동 선생의 사회적 영향을 재조명하여 그 의미를 계승, 발전시키고, 국내 사이클 저변 확대를 위해 창립한다는 의미를 밝혔다. 아울러 은퇴 사이클인들의 돌봄 사업과 함께 후학들에게 전인교육과 더불어 장학 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덧붙였다. 혹자는 엄복동 선생의 위대한 업적은 높이 평가하지만, 말년에 있었던 불우한 삶과 죽음이 있어 평가절하하는 경향을 논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복동 선생이 보여준 노력과 민족의 희망은 감히 아무나 할 수 없었던 그 업적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개봉될 영화와 함께 우리 민족의 숨은 스포츠 영웅들의 일대기를 재조명해 보는 계기가 되어 앞으로 엄복동 선생과 같은 훌륭한 스포츠인들이 후손들에게 많이 알려지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김진국 전문기자/navyj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