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성집은 휘문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 역도의 아버지라 불리던 서상천 교사의 권유로 역도를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기에 역도를 통해 민족정신의 고취에 앞장서고 역도를 통해 항일을 실천하던 서상천 교사가 설립한 중앙체육연구소에 들어가 역도 훈련을 시작했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었던 김성집은 휘문고 4학년 때 각종 국제대회에서 입상을 하기 시작했고, 1936년 일본역도 선수권 대회 및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참가 선수선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 역도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을 제패하고,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세우자 일본역도연맹은 아예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역도 종목의 출전을 포기하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메달리스트인 김성집 선생이 제1회 스포츠영웅에 선정되었다.
이후 세계대전의 여파로 올림픽은 12년 동안 개최가 무산되었고, 194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런던올림픽이 극적으로 개막하였다. 그의 나이 30세였고, 해방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피폐했던 나라 사정으로 올림픽 출전조차 쉽진 않았다. 올림픽에 참가할 자금이 부족해 올림픽후원권이라는 이름의 복권을 발행하여 힘겹게 출전하게 된다. 게다가 미 군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아직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되기도 전의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7개 종목에서 선발된 67명(선수 50명, 임원 17명)의 런던올림픽 선수단은 6월 21일 YMCA회관에 모여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부산에서 배로 일본 후쿠오카와 요코하마를 거쳐 상해로 이동하였고, 이어 홍콩, 방콕, 콜카타, 뭄바이, 바그다드, 카이로, 로마, 암스테르담을 거쳐 약 18일 만인 7월 8일에 선발대가 겨우 런던에 도착하였다.
민족의 고난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따낸 값진 동메달.
마침내 런던올림픽이 개막하였고,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개막일 다음 날 역도 미들급에 출전한 김성집은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다. 1936년 일본의 꼼수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해야 했던 그는 이후에도 두 차례나 올림픽이 무산되면서 대회 출전이 어려웠지만, 그 오랜 시간 좌절보다는 새벽마다 운동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훈련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당시 추상(인상)종목에서 122.5㎏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고, 용상 종목에서 145㎏을 들어 올려 총 합계 380㎏으로 당당히 동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한국선수단은 대회 출전 경험이 그나마 있던 마라톤 선수단에만 기대를 했을 뿐 다른 종목은 참가에 의의를 두고 출전을 했던 터라 그 기쁨은 배가 되었고, 선수단에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에 충분했다. 이 소식은 고국에도 알려져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광복의 그 날처럼 모두 뛰쳐나와 환호를 했다고 한다. 이후 며칠 뒤에는 복싱 플라이급의 한수안 선수가 우리나라 2번째 메달인 동메달을 안겨주어 시상대에는 2번의 태극기가 펄럭였고, 대한민국은 종합 32위에 올랐다.
자랑스런 태극기가 런던 하늘에 처음 펄럭이던 시상식 장면.
스포츠 영웅 김성집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불참을 고려하였으나 결국 참가를 결정하였고,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런던올림픽보다 적은 6개 종목 41명(선수 21명, 임원 20명)이 참가하여 이번에도 김성집은 역도 미들급에서 2회 연속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복싱 밴텀급의 강준호 선수 역시 동메달을 획득하여 대한민국이 37위의 성적을 올리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195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였으며, 38세의 노장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956년 호주 멜버른 올림픽에도 참가하여 5위에 입상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대한민국 역도의 위상을 높이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고,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태능선수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 체육 발전에 공헌하였다. 또한 1995년에는 올림픽(IOC) 훈장을 받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스포츠인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훌륭한 스포츠지도자 故 김성집 선생님의 모습.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타고난 운동 능력과 꾸준한 노력으로 항일운동에 앞장서서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었고, 전쟁의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준 김성집은 우리 시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 영웅이다. 이를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해 2011년부터 대한체육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을 신설하여 스포츠를 통해 우리 시대에 귀감이 되고, 사회통합과 국위선양에 기여한 바가 인정되는 스포츠 영웅들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2011년 초대 수상자가 바로 마라톤 손기정 선생님과 함께 선정된 김성집 선생님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6년 2월 타계(他界)하셨다. 민족의 영웅이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고귀한 노력과 애국정신을 우리는 잊지 말고 후손에 또한 잘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으로 간직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하듯이 우리 민족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모진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신 스포츠 영웅 故 김성집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런 저런 일들로 어수선한 작금의 시대에 다시 한번 그 정신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진국 전문기자 / navyjk@daum.net 사진_대한체육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