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산책] 남북정상회담과 스포츠

기사입력 [2018-09-2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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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축구 친선대회에서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펼치면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

 

민족의 명절 추석을 앞두고 남북한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위한 회담을 가졌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이어 3번째 남북 정상들이 만나는 역사적인 9·19 평양선언이 있었다. 군사적 충돌을 지양하여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상호호혜와 공리공영을 바탕으로 교류와 협력을 더욱 증대시켜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킬 실질적인 대책들을 강구해 나가자는 것이 전문의 핵심 내용으로 보인다. 그리고 4번째 조항에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국제스포츠 대회에 공동으로 적극 참여하며, 2032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남북이 협력하자는 방안도 있었다. 지금까지 단기적인 이벤트로 남북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단일팀을 만든 사례는 많지만, 올림픽 공동 개최에 대한 협력 조항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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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북한 대표단이 함께 참석한 모습.

 

이제는 어느덧 30여년이 흘렀지만, 우리와 가장 유사한 형태의 분단국가는 바로 독일이었다. 동독과 서독의 진형으로 나누어진 같은 민족의 분단국은 그래서 지구상에 우리나라만 존재한다. 그들은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노력들이 많았겠지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통일에 있어 스포츠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된 시점 전부터 동서독은 정치의 이해관계로 같은 민족이었지만, 다른 노선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스포츠만큼은 꾸준히 교류를 하려고 많은 노력들을 했다. 물론 동독은 서독과의 교류에 소극적인 자세를 고수해왔고,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서독은 동독의 그런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포용하고, 친선경기를 가지면서 활발한 교류를 시도하였다. 동서독은 1956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까지 모두 6차례 연속 단일팀을 만들어 동, 하계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서로의 목적이 달라 단일팀 구성으로 인한 효과는 미미했다. 서독은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원했고, 동독은 국제사회에서의 지위획득과 IOC 정식 가입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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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 국가대표 축구팀으로 독일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이끈 전설의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모습.

 

그 뒤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두 나라의 갈등은 점차 극에 달하기 시작했고, 1972년 뮌헨 올림픽때는 동, 서독이 분리되어 출전하기도 하였다. 이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때 서방국가들이 소련의 무력침공을 이유로 보이콧하였고, 그로 인해 1984LA 올림픽때는 공산국가들이 불참하면서 양국 간의 교류도 더욱 소원해졌다. 이를 완화시켰던 것이 1986년부터 양국의 도시 간 자매결연을 통한 스포츠 행사의 교류가 있었다. 과거 동서독 분단 시절 콘라드 아데나워 수상 등 정치인들은 스포츠 교류의 효과를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포츠인들이 끈기 있게 추진한 동서독 스포츠 교류는 결국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정치와 스포츠를 철저히 분리해 통일의 수단으로 활용한 덕분이다. 서독 정부는 40년 이상 끊임없는 교류와 화해의 손길을 펼치며, 동독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연대의식 강화를 위해 개인 대 개인, 클럽 대 클럽, 지역 대 지역으로 연계와 연합을 맺었다. 통일 독일을 위한 순기능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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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독일의 축구 대표팀 경기 모습


스포츠를 통해 평화의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이다. 물론 스포츠 외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치 외교적 결정이고 노력이 선행되어야 가능했겠지만, 그 이후 민간 차원의 스포츠 교류는 통일 독일의 시간을 엄청나게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198112월 서독의 슈미트와 동독의 호네커 수상의 동서독 관계 유지발전을 위한 공동성명이 채택된 이후 청소년, 스포츠, 학술, 문화, 언론 분야의 교류가 활성화되었고, 1986년부터 도시 간(자르루이스와 아이젠슈타트) 자매결연을 통한 스포츠 클럽활동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남과 북도 스포츠 교류가 종종 있었다. 특히 올해는 2018 평창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의 일부 종목에서 단일팀을 이뤘다. 9·19 평양선언문에도 스포츠 교류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목적이 선행된 교류는 독일의 사례처럼 성공이 어려울 것이다. 단계별 교류 계획을 가지고 민간 차원의 스포츠 교류가 시작되어야 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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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농구대회에서 관중들이 조국은 하나다 라는 문구로 응원하는 모습.

  

동서독은 1989119일 통일이 되기까지 약 40년 동안의 스포츠 교류를 위한 노력을 통해 통일 독일을 완성하였다. 우리는 1945년 해방 이후 남과 북이 분단이 되어 지금까지 78년의 세월이 흘러왔고, 정상회담 등 교류를 위한 노력은 불과 20여년이 채 되지 않는다. 통일 독일의 역사적 교훈을 타산지석 삼아 남북통일을 위한 실천적 과제와 우선순위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시점이다. 40여년의 노력 끝에 통일한 독일보다 더 빠른 통일의 길은 민간 차원에서의 스포츠를 비롯한 다양한 교류가 우선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교류 역시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이고, 가치 있는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 역시 많은 관계자들의 지혜를 모아야할 것으로 판단된다. 모쪼록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으로 인해 남북한의 관계가 평화와 화합을 위한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 실질적인 협력의 장을 마련하여 지구상의 동족 분단국가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이를 위해 스포츠인들의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 마련과 노력할 준비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진국 전문기자 / navyj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