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산책] 대만의 국제대회 서러움

기사입력 [2018-08-27 09:42]

하계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리는 마라톤에서 우리나라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하여 2시간 29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또한 남승룡 선수는 3위를 차지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시상식에서 월계관을 쓴 두 선수는 올림픽 메달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슬픈 표정이 역력하였으며 손기정 선수는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리기 위해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수를 가슴 앞에 두며 일장기를 가리고 있었다. 이후 두 선수는 일본 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자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국기게양대에 올라가고 있는 일장기를 외면하고 땅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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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고(故) 손기정 선수를 추모하는 헌정음반 '42.195 그레이트 손'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발매해 화제가 된 독일 재즈 앙상블 살타첼로가 자신들의 곡 '마라톤맨'을 연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마라토너로서 금메달을 딴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이었지만 일본의 식민지로 인해 일장기를 달고, 일본 국가를 들어야 했던 두 선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울분이 폭발하기 직전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유사한 비극을 겪고 있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는 바로 대만이다. 중국의 근대사를 아는 사람은 대만의 올림픽 비극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진 후 중국 전역은 군벌이 지배하고 있었고, 중화민국의 통치권 확립을 위해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군벌세력으로 분열된 중국을 재통일하기 위해 제1차 국공합작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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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시아시리즈에 출전한 대만 팀을 응원하기 위해 대만 팬들이 대형 국기를 펼치며 응원하고 있는 모습

 

그러나 1925년 국민당을 이끌던 쑨원이 사망하고, 장제스가 총사령관이 된 후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벌여 중국 공산당은 괴멸하다시피 숨어들어 제1차 국공합작이 결렬된다. 그런 와중에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의 위협이 커지자 다시 공산당과 손을 잡고 중일전쟁에 나서게 되는데 이를 제2차 국공합작이라 부르고 이 전쟁기간 동안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은 일본에 패하여 세력이 약해졌고, 상대적으로 공산당의 세력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이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대만을 되찾은 중국은 다시 내전에 돌입하여 결국 1949년 공산당이 중국을 점령하고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며 국가주석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해 장제스는 대만으로 탈출한 후 타이페이를 중화민국의 수도로 정하였고, 1972년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한 후 중국 정부를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면서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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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수와 대만선수의 태권도 경기 모습, 대만 선수의 왼팔에는 대만국기가 아닌 올림픽기가 새겨져 있다.

 

이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면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대만은 기존의 명칭이었던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을 사용하지 못하여 올림픽 무대에서 중화 타이페이(Chinese Taipei)를 써야 했다. 그것은 1984LA올림픽 때 처음 올림픽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대만은 올림픽 무대에서 공식명칭은 물론 자국의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올림픽 오륜마크와 국화인 매화가 그려진 올림픽위원회기를 달고 출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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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에서 대만의 Hsingchun Kuo 선수가 여자58kg 역도 부문 금메달을 차지했다.(출처: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타이완의 태권도 선수인 천스신 선수가 타이완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경기장에는 타이완 국기 대신 중화올림픽위원회 깃발이 게양되었고, 국가 대신 국제올림픽위원회의 ‘song of the national flag’가 울려 퍼졌다. 1936년 마라톤 시상식 때처럼 월계관을 머리에 쓰고 거수경례를 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 장면을 보면 금메달을 따서 기쁜 눈물이 아닌 슬픔으로 가득 찬 슬픔의 눈물이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이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국기와 국호 그리고 국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픔을 간직한 채 경기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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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야구대표팀이 금메달을 수여받고 있는 모습

 

이러한 아픈 역사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으로 인해 아직도 기쁨의 눈물이 아닌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올림픽의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올림픽은 정치성이 있는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중립성을 지향하지만 대만의 사례를 보면서 한번쯤 제고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많은 관계자들이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관점에서 대만의 올림픽 참가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이 땅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고, 우리의 대한민국 국기를 당당하게 들고 국가를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진국 전문기자/navyj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