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재구성] ‘열아홉 열정’ 허윤동의 ‘준비된’ 데뷔전 선발승

기사입력 [2020-05-29 15:09]

두려울 게 없다. 도전은 아름답다. ‘열아홉 열정’이기에 따뜻한 격려와 많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삼성의 열아홉 새내기 허윤동이 의미 있는 승리를 따냈다. 첫 1군 무대에서 알찬 신고식을 했다. 28일 부산 롯데전에서 고졸 신인으로서 역대 9번째 데뷔전 선발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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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의 왼손잡이 신인 투수 허윤동이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 선발로 첫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허윤동은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데뷔전 선발승도 준비된 것이었다.

 

유신고 시절부터 KT에 입단한 소형준와 함께 고교 야구 정상을 지켰다. 허윤동은 201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이끌면서 최우수 선수상과 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황금사자기 때는 소형준이 최우수 선수상과 우수 투수상을 받고 유신고의 전국 2관왕을 책임졌다. 허윤동은 청소년 대표로서도 최다 이닝을 던지는 등 일찌감치 존재감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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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동과 소형준은 유신고의 원투 펀치였다. 2020 신인 드래프트에서 소형준은 KT 1차 지명, 왼손 투수인 허윤동은 삼성 2차 1라운드 5순위로 각각 프로에 입단했다.

 

삼성은 ‘투구 밸런스가 좋고 경기 운영 능력이 우수하다. 기본기도 좋다. 입단 후 구속을 늘리면 장기적으로 선발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허윤동을 선택했다. 삼성은 체계적으로 허윤동의 선발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올해 오키나와 스프링 캠프에서 제외하고 경산에서 다른 신인들과 함께 적응하도록 했다. 오치아이 2군 감독의 지도로 다시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고, 순발력 강화 훈련에 몰두했다. 투구 스피드를 올리고, 변화구 제구를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곧바로 1군 무대에 세우지도 않았다. 먼저 퓨처스 리그에서 실전 경험을 쌓도록 했다.

 

허윤동은 지난 8일 퓨처스리그에 첫 등판했다. 상무를 상대로 2이닝 동안 무안타 무실점. 그러나 볼넷이 4개였다. 16일 롯데전에선 4이닝 동안 삼진 8개를 솎아내면서 5안타와 볼넷 3개로 1실점했다. 승패없이 교체됐다.

 

그리고 22일 KIA전에 다시 선발로 나가 6이닝 동안 3안타와 볼넷 2개, 삼진 4개로 무실점 피칭을 하면서 승리를 따냈다.

 

퓨처스 리그 3게임에서 12이닝을 던져 2승과 평균자책점 0.75.

1군에 등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빨랐다. 삼성 선발진에서 왼손 백정현과 벤 라이블리가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허윤동은 2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를 상대로 명실상부한 데뷔전을 치렀고, 당당하게 첫 선발승을 기록했다. 최채흥, 원태인과 함께 ‘영건 트리오’를 완성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 2020년 5월28일 부산 사직구장, 새내기 허윤동은 영리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담스럽기도 했다. 유신고 동기인 KT 소형준은 이미 프로 데뷔전에서 승리를 올리면서 주목 받는 신인으로 자리매김했으니 ‘잘 해야 한다’이 생각이 좀체 떠나지 않았다.

 

이런 탓이었을까. 1회말 1번 민병헌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진 뒤 볼, 볼에 이어 몸에 맞는 공으로 내줬다. 2번 전준우를 1루수 파울플라이로 잡았지만 여전히 제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3번 손아섭에겐 스트레이트 볼넷. 1사 1‧2루의 실점 위기를 자초했다.

 

4번 이대호는 초구와 2구에 파울, 3구는 왼쪽 폴대 위쪽으로 날아가는 큼지막한 타구였다. 김성철 3루심이 홈런 사인을 보냈다. 삼성 벤치에서 즉각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홈런에서 파울로 판정을 번복했다. 허윤동이 한숨을 돌렸다.

 

이대호는 역시 강했다. 허윤동에게 우전 안타를 뽑아 1사 만루를 만들었다.

 

그러나 허윤동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5번 안치홍을 3루수 직선타, 6번 김동한을 2루수 땅볼로 잡았다. 가까스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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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허윤동은 28일 부산 롯데전에 선발로 나가 5이닝을 던지는 동안 좋은 위기 관리 능력을 보였다.  

 

다시 2회에 1사 만루, 3회에 2사 2·3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최고 시속 139km 직구와 시속 115km 안팎의 커브를 배합해 실점을 막았다. 4회는 삼자범퇴. 5회 2사 2루에선 김동한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았다.

 

5이닝 동안 24명의 타자를 상대로 총 97개의 공을 던져 4안타와 볼넷 4개, 몸에 맞는 공 1개, 삼진 1개로 무실점을 기록했다. 허삼영 감독은 삼성이 3-0으로 앞선 6회말 허윤동 대신 노성호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허윤동의 데뷔 첫 선발승은 타선과의 조화 속에서 이뤄졌다.

 

먼저 2회초 2사 후 7번 박찬도가 중월 2루타를 날리면서 롯데 선발 샘슨을 괴롭혔다. 2사 2루에서 8번 김헌곤도 좌익선상 2루타를 날려 선취점을 올렸다.

 

1-0으로 앞선 4회초 1사 1루에선 5번 살라디노가 좌중간 2루타를 날려 1점을 추가했다. 허윤동의 어깨가 가벼워졌다. 6회초 2사 1․2루에선 8번 김헌곤이 다시 중전 적시타로 날려 3-0으로 점수차를 벌렸다.

 

허윤동은 3-0으로 앞선 6회말부터 홀가분하게 선배들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노성호에 이어 최지광, 이승현, 우규민 등 4명이 선발 허윤동의 승리를 지켜냈다.

 

허삼영 감독은 허윤동의 위기 극복력을 칭찬했다. 어린 신인답지 않았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 김태형의 완투승과 류현진의 10K 그리고 ‘유신고 돌풍’

 

프로의 벽은 높다. 갈수록 발전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졸 신인, 열아홉살 새내기들이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차거나 1군 마운드에 서는 일이 점점 어려운 까닭이다.

 

1982년 출범한 KBO리그에서 처음으로 고졸 신인이 선발로 나가 승리한 주인공은 롯데 김태형이었다. 부산상고(현 개성고)를 졸업하고 입단해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영리한 투구로 데뷔전부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김태형은 1991년 4월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OB전에 선발로 나갔다. 당돌했다. 흔들림 없이 OB타자들을 상대했다. 한 이닝 한 이닝. 9회까지 총 135개의 공을 던졌다. 6안타를 맞고 볼넷 2개로 1점만 내줬다. 삼진은 6개. 완투승이었다.

 

프로 출범 10년째를 맞아 처음으로 고졸 새내기가, 그것도 완투승으로 데뷔전 승리를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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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A 김진우(왼쪽)와 한화 류현진은 고교 때부터 주목 받던 유망주였다. 김진우와 류현진은 똑같이 데뷔전에서 탈삼진 10개를 뽑아내면서 기대를 모았었다. 

 

그 후 2001년까지 10년 동안 고졸 신인들은 선발승과 거리가 멀었다.

 

2002년 ‘제2의 선동열’이란 기대를 모으면서 광주 진흥고를 졸업한 김진우가 KIA에 입단하면서 4월9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현대전에서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을 재현했다. 6이닝 동안 7안타 2실점(1자책). 무4사구 투구였고, 삼진을 무려 10개나 잡아냈다.

 

그리고 2006년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인천 동산고를 거쳐 한화에 입단해 새 역사를 썼다. 류현진은 2006년 4월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전에 첫 선발로 나가 7.1이닝 동안 3안타 볼넷 1개와 함께 10K를 찍고 무실점 피칭을 했다. 한화는 이날 4-0으로 승리했다. ‘류현진의 역사’가 시작됐다.

 

한동한 뜸 하던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은 2014년 LG 임지섭과 넥센 하영민에 이어 2018년 삼성 양창섭과 KT 김민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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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고를 졸업하고 KT에 입단한 신인 소형준은 지난 8일 잠실 두산전에서 역대 8번째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을 거둔 데 이어 지난 28일 수원 KIA전에서 시즌 3승째를 올리는 등 위력적인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 KT 소형준과 삼성 허윤동이 이름을 올렸다.

 

김민, 소형준과 허윤동은 모두 유신고 출신이다. 잘 다듬어진 기본기와 투구 자세가 프로에서 통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맏형 격인 김민은 2018년 7월27일 수원 LG전에서 5이닝 2안타 볼넷 3개, 탈삼진 3개로 1실점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소형준은 지난 8일 잠실 두산전에서 5이닝 동안 5안타와 볼넷 1개로 2실점하며 승리를 따냈다. 타선이 폭발한 KT가 12-3으로 두산을 크게 물리쳤다.

 

먼저 데뷔전 선발승을 올린 소형준은 허윤동의 데뷔전 승리를 축하했다. 같은 날 수원 KIA전에서 5이닝 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한 9안타를 맞고 5실점했지만 타선 지원 속에 시즌 3승째를 올린 뒤 허윤동에게 축하 전화를 했다.

 

소형준과 허윤동은 이제 열아홉이다. 미래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