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재구성] 투수에서 타자로, 다시 투수로…앗! 끝내기 보크

기사입력 [2020-05-18 13:11]

2020시즌이 팀 별 10게임을 넘어섰다. NC의 강세, SK의 열세가 두드러진다.

 

NC는 17일 SK전에서 11-5로 이겨 6연승을 완성하면서 10승1패로 단독 선두를 지키고 있다. 2016년 9월10일 대전 한화전부터 23일 수원 KT전까지 6연승을 올린 이후 무려 3년8개월여 만에 기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SK는 주전들의 부상 악재가 겹쳐 9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졌다. 1승 10패. 꼴찌다. 이젠 팀 최다 연패인 11연패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벌써 스멀스멀 ‘5강5약’이란 판세 분석이 고개를 들 정도다. 18일 현재 NC를 포함해 두산과 LG, 롯데, 키움이 5강을 이루고 있다. 5약은 KIA와 한화, KT, 삼성, SK다.

 

순위는 언제든 뒤바뀐다. 겨우 10게임 조금 더 치렀으니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현상은 현상일 뿐이다. 페넌트레이스는 대장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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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우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투수로 롯데에 입단해 타자로, 다시 투수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그런 김대우가 지난 17일 대전 한화전에서 역대 7번째 끝내기 보크를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진기록도 쏟아지고 있다. 좀체 보기 드문 통산 7번째 끝내기 보크까지 나왔다. 롯데 김대우(36)가 주인공이다.

 

김대우는 투수에서 타자로, 다시 투수로 오가면서 프로 무대에서 꽃을 피워보려 안간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프로 13년차, 서른 중반에 불명예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왔다 갔다 하면서 혼란스러운 탓이었을까.

 

# 어찌 이런 일이 - 2020년 5월17일 대전구장 연장 11회말

 

올 시즌 롯데는 쾌조의 출발을 하고 있다. 지난해 꼴찌가 허문회 감독을 영입한 뒤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18일 현재 팀 타율 3위(0.289)와 팀 평균자책점 4위(4.11)다. 공격력 뿐 아니라 불펜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 17일 대전 한화 연장 11회말, 상상도 하지 않았던 '끝내기 보크'의 해프닝으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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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는 4-4로 연장 승부를 펼쳤다. 연장 11회초까지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롯데 벤치에선 연장 10회부터 전문 마무리 김원중 대신 베테랑 김대우를 마운드에 올렸다.

 

김대우는 연장 10회말 2사 후 2번 정은원에게 안타를 내줬지만 실점 없이 이닝을 마감했다. 그러나 연장 11회말 선두 타자 7번 최재훈을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내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한화 한용덕 감독은 무사 1루에서 최재훈를 빼고 장운호를 대주자로 내세우며 승부수를 던졌다. 8번 김회성은 희생 번트 성공, 9번 장진혁은 1루 땅볼로 물러났다. 그 사이 1루 대주자 장운호는 3루까지 진루했다. 2사 3루.

 

김대우는 아웃 카운트 1개만 더 잡으면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타석에 1번 정진호가 들어섰다. 초구는 볼, 2구를 던졌다. 정진호가 어정쩡하게 방망이를 돌렸다. 전일수 주심이 헛스윙이라고 판정했다. 정진호가 투구 동작이 ‘이상했다’고 항의했다. 주심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화 벤치에서 한용덕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뛰쳐나왔다. “보크”라고 외쳤다. 박종철 3루심이 마운드 쪽으로 걸어가면서 ‘보크’를 선언했다. 3루 주자 장운호가 홈 플레이트로 달려갔다.

 

올 시즌 1호이자 통산 7번째 끝내기 보크.

 

김대우는 투구를 하려고 밟고 있던 오른발을 투수판에서 뒤로 빼면서 거의 스트라이드도 하지 않은 채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다. 마치 야수가 송구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야구규칙 6.02 투수의 반칙 행위 (a)항 (7)조에는 ‘투수가 투수판을 밟지 않고 투구와 관련된 동작을 취하였을 경우’를 보크로 규정하고 있다.

 

김대우는 투구를 하는 순간 축족인 오른발을 투수판에서 뒤를 뺐으니 멍한 표정과 달리 보크 판정에 더 이상 항의할 수 없었다.

롯데는 연장 11회의 승부에서 4-5로 허탈하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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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우의 끝내기 보크는 ‘예고된(?) 참사’

 

김대우는 투수와 타자를 오갔다. 광주일고를 졸업하던 2003년 롯데가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번으로 지명했지만 상무를 거쳐 2008년부터 프로에 입문했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졌으니 투수로서 기대치가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투수로 보낸 시즌은 3차례였다. 2009년과 2010년, 그리고 2018년 투수로 등록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통산 3시즌 동안 총 9게임에 나가 12.2이닝을 던진 것이 전부였다. 3패와 평균자책점 15.63. 2009년과 2010년, 투수로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치자 타격 능력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타자로 전향하기로 했다. 장타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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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우는 입단 초기, 투수로서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자 2012년부터 타자로 전향했다. 그러나 이 역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그러나 타자로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2012년부터 타자로 나섰지만 6게임에 나갔지만 단 1개의 안타도 기록하지 못했다. 2013년에 69경기에 나가 홈런 4개를 포함한 43개의 안타로 타율 2할3푼9리를 남긴 정도였다. 끝내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김대우는 2017년 12게임에 나가 홈런 없이 안타 4개로 타율 2할에 그친 뒤 다시 투수로 돌아왔다. 서른네 살에 마지막 도전을 선택했다.

 

2018년 다시 투수로 마운드에 섰다. 그러나 5게임에 나가 평균자책점 13.50.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다. 지난해 1군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김대우는 올해 긴 머리와 함께 돌아왔다.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올 시즌 첫 등판이었던 지난 8일 SK전에서 볼넷 1개를 내주며 1이닝 1실점, 12일 두산전 1이닝 3피안타 2실점, 14일 두산전에선 1.1이닝 동안 볼넷 1개를 내줬지만 삼진 2개를 잡고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그러나 시련은 계속됐다. 악몽이 되살아났다. 프로 데뷔전이었던 2009년 4월25일 부산 LG전에서 1회 초에만 무려 5개의 볼넷을 연속으로 내줬던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KBO 역대 최다 연속 타자 볼넷 5개를 내준 투수는 김대우를 포함해 총 8명. 김대우만 1게임, 같은 이닝에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김대우는 투수보다 타자로서 더 많은 시즌을 보냈다. 마운드에서 동물적으로 반응하고 투구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끝내기 보크가 예고된 참사는 아닐까.

 

# 끝내기 보크, 장명부에서 배영수까지

 

1982년 출범한 KBO리그에서 지난해까지 끝내기 보크는 총 6차례.

 

1986년 7월26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빙그레와 MBC 경기에서 첫 끝내기 보크가 기록됐다. 9회말 무사 만루에서 빙그레 투수 장명부가 김재박의 타석에서 보크를 범했다.

 

1996년 9월 4일 잠실 LG전에서 현대 마무리 정명원이 9회말 2사 만루에서 유지현의 타석 때 통산 4번째 끝내기 보크를 기록한 뒤에는 2017년까지 잠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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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끝내기 보크 기록에 6번째와 5번째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린 배영수(왼쪽)와 문경찬.

 

그리고 2018년 7월 27일 대구 삼성전에서 KIA 투수 문경찬이 통산 5호, 지난해 9월14일 두산 투수 배영수가 통산 6호를 각각 기록했다.

 

문경찬은 10 - 10 동점이던 연장 11회말 2사 만루에서 이원석을 상대하던 중 세트 포지션에서 초구를 던지려다 말고 축족인 오른발을 투수판에서 빼버렸다. 이원석이 타석에서 벗어나면서 보크라 외쳤고, 최수원 3루심이 보크 판정을 내렸다.

 

배영수는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전에서 6-6이던 9회말 1사 1, 3루에서 노수광 타석 때 투수판을 밟고 투구 동작을 하는 듯 했지만 갑자기 1루로 견제하는 동작한 뒤 공을 던지지 않고 동작을 멈췄다. 순간 4심이 모두 보크를 선언했다. 3루 주자 한동민은 펄쩍펄쩍 뛰면서 홈으로 들어왔다.

 

김대우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끝내기 보크를 ‘쓴 약’으로 삼으리라. (이창호 전문기자 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