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재구성] LG 임찬규와 임지섭의 `춤추는` 제구력, 그리고 4사구

기사입력 [2019-06-17 11:47]

‘어후~ 아~ 또. 스트라이크 좀 던져라.’

 

LG가 3-0으로 앞선 2회말 수비. 모두 답답하다. LG 더그아웃도, 잠실구장을 찾은 팬들도 똑같은 마음이다.

 

선발 임찬규에 이어 임지섭, 김대현까지 3명의 투수가 2회말에 던진 공은 총 47개. 이 중 볼이 무려 32개이니 한숨과 탄식이 나올만하다. 스트라이크는 13개, 파울은 2개였다. 특히 임찬규와 임지섭은 연속 볼넷 또는 몸에 맞는 공으로 역전패의 빌미가 된 ‘잠실 참사’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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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투수 임찬규(왼쪽)와 임지섭은 16일 잠실 두산전에 나가 '무더기 4사구'를 내줬다. 결국 LG는 3-5로 역전패했고, 각종 불명예 기록를 남기게 됐다. 

 

LG는 2회말 11명의 두산 타자를 상대로 안타를 단 1개도 내주지 않았지만 볼넷 6개와 몸에 맞는 공 2개로 무려 5점을 내줘 3-5로 역전패했다.

 

LG는 KBO리그 역대 두 번째 한 이닝 최다 4사구 타이(8개) 기록과 역대 14번째 한 이닝 최다 볼넷 6개의 불명예를 안았다.

 

한화는 1994년 6월 24일 전주구장에서 열린 쌍방울전에서 1회에 총 8개의 4사구를 내준 적이 있다. 역대 한 이닝 최다 볼넷 6개는 1990년 7월 9일 LG가 잠실 삼성전 1회에 기록하는 등 그동안 총 13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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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LG 마운드가 흔들린 틈을 타 KBO리그 최초로 한 이닝 무안타 최다 득점(5점)과 한 이닝 무안타 타자 일순(11명)의 진기록을 세웠다.

 

종전 한 이닝 무안타 최다 득점은 1996년 7월 26일 쌍방울이 OB전에서 기록한 4점. 쌍방울-OB전을 포함해 역대 안타 없이 4점을 올린 경기는 모두 3차례였다.

 

# 2019년 6월 16일 잠실구장 LG와 두산전 2회말 - 쉴 새 없이 이어진 ‘볼쇼’

 

LG는 두산 선발 최원준을 상대로 1회에 2점, 2회에 1점을 뽑고 주도권을 잡았다. 선발 임찬규가 여유를 갖고 두산 타선을 상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2회말 두산의 선두타자는 5번 박건우. 초구부터 높은 공이 들어갔다. 3구째 헛스윙을 할 때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공을 던졌을 뿐 나머지 4개의 공이 ‘붕붕’ 날아다녔다. 참사의 시작이었다.

 

무사 1루에서 6번인 왼손 타자 오재일을 상대할 때는 철저하게 몸쪽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공이 가지 않았다. 박건우에게 높은 공이 많았던 것을 의식한 듯 낮은 제구를 신경 썼지만 헛수고였다. 1구부터 3구까지는 지나치게 몸쪽으로 쏠렸고, 4구는 또 높은 곳에 탄착점이 형성됐다. 스트레이트 볼넷.

 

7번 박세혁에게 초구에 던진 공은 변화구. 그러나 몸쪽으로 날아가더니 왼쪽 허덕지 위를 때렸다.

 

안타 1개도 없이 무사 만루. 임찬규가 흔들렸다. 윤태수 주심의 판정을 탓할 수 없었다. 볼과 스트라이크의 구분이 워낙 분명했다. 최일언 투수 코치가 답답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갔다.

 

8번 김재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는 포수 유강남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높이, 백스톱까지 날아갔다. 폭투로 3루주자 박건우가 홈을 밟았다. 계속 무사 2, 3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불펜에선 왼손투수 임지섭이 몸을 풀고 있었다.

 

임찬규는 안정을 찾지 못했다. 볼카운트 1볼 1스트라이크에서 3구를 던질 때는 포수 유강남과 사인을 맞추지 못했다. 빠른 직구가 들어오자 유강남이 화들짝 놀라면서 미트로 겨우 막아내 공이 튕겨 나갈 정도였다. 김재호도 볼넷을 얻어 또 무사 만루.

 

임찬규의 피칭은 여기까지. 2회 말 4타자를 상대로 볼넷 3개와 몸에 맞는 공 1개를 던지는 등 이날 1이닝 동안 총 8타자에게 35개의 공을 던지는 동안 1안타와 볼넷 4개, 몸에 맞는 공 1개를 내줬다. 최악의 피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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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선발 임찬규(오른쪽, 등번호 1번)가 16일 잠실 두산전에서 3-1로 앞선 제구 난조로 흔들린 탓에 2회말 무사 만루에서 임지섭으로 교체된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동료 선수들이 격려하고 있다.  

 

두 번째 투수 임지섭도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탓일까. 이틀 연속 등판의 피로감 탓일까. 좌우 스트라이크 존을 폭넓게 활용하려고 했지만 영점을 잡느라 애를 먹었다. 9번 류지혁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LG는 2-3으로 추격당한 무사 만루에서 1번 정수빈의 1루 땅볼을 조셉이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낸 뒤 홈에 던져 3루주자 박세혁을 잡아 추가 실점을 막았다. 한숨을 돌리는 듯 했다.

 

그러나 2번 페르난데스의 타석부터 임지섭도 갈팡질팡. 철저하게 바깥쪽 낮은 쪽의 변화구로 승부했지만 유리한 볼 카운트를 만들지 못했다. 볼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에서 몸쪽 공을 던졌지만 볼이었다. 3-3 동점을 만들어주는 밀어내기 볼넷.

 

LG 마운드가 무너졌다. 3번 최주환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도 4번 김재환에겐 3볼 이후 4구째 몸에 맞는 공을 던져 3-4로 역전 당했다. 타자 일순하고 다시 타석에 선 5번 박건우에겐 또 밀어내기 볼넷.

 

벤치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었다. 3-5로 뒤진 채 계속된 2사 만루에서 임지섭이 6번 오재일에게 볼 2개를 연속으로 던지자 다시 교체 카드로 김대현을 내세웠다. 김대현이 오재일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 길고 힘겨웠던 ‘참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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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임찬규와 임지섭의 제구 난조로 내준 ‘황당한 5점’ 탓에 결국 이날 ‘3-5’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제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빠르기보다 더 필요한 것이 제구력이다. 임찬규와 임지섭이 제구가 왜 중요한지 ‘본보기’를 보여줬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