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재구성] 차우찬 ‘한 이닝 4K’ 진기록, 득일까 화일까

기사입력 [2019-05-08 11:19]

야구는 한 이닝에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내는 게임이다. 투수가 3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다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특히 투구수를 최소화하면서 타자들에게 ‘KKK’를 그려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하지만 한 이닝에 4개의 삼진이 기록될 때도 있다. 아주 진기한 상황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strike out not out)이란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분명 ‘삼진 아웃은 맞는데 아웃이 아니다’는 의미다.

 

2스트라이크 이후에 3번째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지만 포수가 이 공을 잡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타자는 아직 아웃이 되지 않은 상태다. 1루까지 뛸 수 있다. 포수가 놓친 공을 다시 잡아 타자주자를 태그하거나 1루에 던져 포스 아웃시켜야 한다. 낫아웃은 스윙 여부와 관계없다. 이 때 공식기록원은 삼진과 함께 다음에 이뤄진 플레이를 병기한다.

 

낫아웃은 무사나 1사에선 1루에 주자가 없을 때, 2사 후엔 주자 유무와 관계없이 성립한다. 1루에 주자가 있으면 포수가 고의적으로 공을 놓쳐 더블 플레이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낫아웃’ 탓에 어쩌다 한번씩 ‘한 이닝 4K’라는 진기록이 연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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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차우찬이 4월30일 잠실 KT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차우찬은 이날 역대 9번째 한 이닝 최다 탈삼진 4개를 기록하는 등 5이닝 7안타 3실점했지만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LG 차우찬(32)이 역대 9번째 ‘한 이닝 4K’를 기록했다. 2016년 8월23일 SK 서진용이 대구 챔피언스 파크에서 삼성을 상대로 8회말 ‘한 이닝 4K’의 진기록을 세운 뒤 3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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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우찬은 이날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5이닝 7안타 3실점. 삼진은 5회에 기록한 4개가 전부였다. 승부가 9-9 동점이던 연장 11회말 2사 만루에서 이천웅의 끝내기 밀어내기 4구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다음 등판이었던 지난 5일 잠실 두산전에선 ‘와르르’ 무너졌다. ‘곰 사냥꾼’이란 명성에 먹칠을 했다. 3이닝 동안 8안타와 볼넷 2개로 6실점(5자책)하며 올 시즌 첫 패전 투수가 됐다. ‘KKKK’ 진기록이 화를 불러온 탓일까.

 

# 2019년 4월 30일 잠실구장, KT전 5회초 - 'KKKK'

 

LG가 8-3으로 크게 앞서가고 있었다. 선발 차우찬이 마운드에 올랐다. 첫 상대는 1번 오태곤. 초구에 좌익선상 2루타를 맞았다. 정신이 번쩍 났다.

 

무사 2루. 다음 타자는 선발 3루수 황재균이 갑자스레 허리 통증을 호소하자 3회 수비부터 출전한 문상철이었다. 초구 볼에 이어 2구는 스트라이크, 차우찬의 제구가 썩 완전하진 않았다. 결국 풀카운트까지 몰렸지만 6구째 바깥쪽에 꽉 차는 빠른 직구를 던졌다. 문상철을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첫 K.

 

1사 2루에서 3번 강백호와 만났다. 베테랑 왼손 투수와 신예 왼손 타자의 대결. 차우찬이 자신감을 되찾았다. 볼카운트 싸움도 유리하게 이끌었다. 1볼 2스트라이크에서 4구째로 바깥쪽 슬라이더를 선택했다. 헛스윙 삼진으로 강백호를 돌려세웠다. 두번째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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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투수 차우찬(오른쪽)과 포수 유강남이 4월30일 잠실 KT전 5회초를 끝낸 뒤 나란히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있다. 

 

차우찬은 4번 로하스와의 승부로 잘 이끌었다. 초구 볼에 이어 2구 스트라이크, 3구 헛스윙까지. 4구째 시속 111km의 각도 있는 커브를 안쪽으로 던졌다. 느린 변화구가 몸쪽으로 들어오자 로하스는 또 헛스윙. 삼진이었다. 그러나 포수 유강남이 뚝 떨어지는 공을 잡지 못했다. 원 바운드로 튀면서 백스톱으로 굴러갔다. 낫아웃 상태가 됐다.

 

2루 주자 오태곤은 3루로 내달렸고, 로하스도 1루까지 전력질주했다. 유강남이 재빠르게 움직여 공을 잡고 1루로 던졌다. 여유있게 아웃시킬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또 원바운드 송구였다. 공은 1루수 류형우의 미트로 들어가지 않고, 허벅지에서 허리 쪽으로 올라오더니 다시 옆구리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굴러갔다. 류형우가 가까스로 잡았다. 그 사이 로하스는 1루 캔버스를 밟고 지나갔다.

 

박종철 1루심은 아웃 제스처를 취하다 세이프로 결정을 바꿨다. 포구가 완전하지 못했다는 판단이었다. 순식간에 2사 주자 1, 3루. LG 류중일 감독이 즉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타자주자 로하스는 1루에서 세이프.

 

공식기록원은 ‘로하스 타석에 세 번째 K와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상태에서 차우찬의 폭투로 출루했다’고 명기했다.

 

차우찬은 이미 삼진 3개를 잡고도 5번 유한준을 맞았다. 볼카운트 1볼 2스트라이크에서 6구째 볼을 던질 때는 1루주자 로하스가 2루 도루까지 감행했다. 2사 2, 3루. 차우찬은 볼카운트 2볼 2스트라이크에서 8구째로 시속 110km 짜리 느린 커브를 바깥쪽에 던졌다. 유한준도 로하스처럼 헛스윙 삼진. 네 번째 K.

 

차우찬은 이닝 교체를 위해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면서 포수 유강남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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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찬은 8일 현재 7게임에 나가 4승1패와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 중이다. ‘KKKK' 진기록을 득으로 만들지, 화로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