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재구성] SK의 진짜 추남들, ‘홈런’ 박정권과 ‘출루’ 최정

기사입력 [2018-10-29 13:29]

SK의 베테랑 듀오인 박정권(37)과 최정(31).

 

이들은 유행가 노랫말처럼 가을이 오고, 찬바람 불고, 낙엽이 흩날리면 더 불끈 힘을 내곤 한다. ‘가을 사나이, 추남(秋男)’이라고 불린다. 특히 10월에 아주 강한 타자인 박정권은 ‘미스터 옥토버(Mr. Octorber)’란 별명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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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왼쪽)과 최정은 SK의 간판 선수다. 10월이 오면 더욱 빼어난 활약으로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정권은 지난 27일 플레이오프 최다 홈런, 최정은 28일 플레이오프 최다 연속 경기 출루 신기록을 각각 세웠다. 진정한 '가을 사나이'들이다. 

 

박정권과 최정이 플레이오프에 나선 SK 타선을 이끌어가고 있다. 박정권은 10월 2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1차전에서 그림 같은 끝내기 아치를 그렸다. 10-8의 짜릿한 승리를 만들었다. 모두 환호했다.

 

박정권은 플레이오프에서만 개인 통산 7개의 아치를 그려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박정권은 그저 “힘을 빼고 즐겼다”고 말한다.

 

최정은 SK 타선의 중심이다. 1차전에서 1회말 터뜨린 홈런을 포함해 3타수 2안타 1타점과 볼넷 2개로 출루하면서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플레이오프에서 개인 통산 16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했다.

 

멈추지 않았다. 10월 28일 2차전에서도 4-1로 앞선 7회말 승부에 쐐기를 박는 좌월 1점 홈런을 날리면서 출루에 성공했다. 역대 플레이오프 연속 경기 출루 신기록(17경기)를 세웠다.

 

결국 SK가 5-1로 이겼다. 2연승이다. 1승만 더하면 두산이 기다리고 있는 한국시리즈다. ‘가을 사나이’ 박정권과 최정의 힘이 SK를 2012년 이후 6년 만에 한국시리즈로 이끌어 가고 있다.

 

역대 28번 플레이오프 중 5전3선승제에서 1, 2차전에서 연승을 거둔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경우는 14번 중 12번이었다. 85.7%의 한국시리즈 진출 확률을 나타냈다.

 

# 2018년 10월 2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박정권 ‘나는 가을 사나이다’

 

정규시즌 2위 SK가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꺾고 올라온 넥센과 5전3선승제의 플레이오프 1차전을 가졌다.

 

SK는 김광현, 넥센은 브리검을 각각 선발로 내세웠다. 투수전을 예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1회부터 SK 3번 최정이 홈런포에 불을 붙이면서 뜨거운 방망이 경쟁을 이어갔다.

 

최정에 이어 SK에선 4회말 1번 김강민이 좌중월 2점, 5회말 8번 김성현이 좌월 3점을 터뜨리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넥센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8번 2루수로 출전한 송성문이 SK 에이스 김광현을 상대로 5회초 중월 2점, 7회초 우월 2점의 연타석 아치로 엎치락뒤치락 승부를 이어갔다. 7회초엔 3번 샌즈가 좌월 3점 아치로 8-8 동점을 만들었다.

 

승패의 향방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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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SK 4번 박정권이 4-1로 앞선 6회초 무사 1루에서 부첵으로부터 쐐기 우월 2점 홈런을 날리고 있다.   

 

SK는 ‘홈런 군단’이다. 정규 시즌에서 무려 233개의 대포를 쏘아 올릴 정도였다. 로맥(43개), 한동민(41개)이 4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등 무시무시한 장타력을 뽐냈다.

 

그러나 박정권은 없었다. 로맥과 1루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6월에만 7경기에 나갔다. 14타수 3안타로 타율은 2할1푼4리, 홈런 1개와 타점 4개. 초라했다. 2군행을 감수해야 했다.

 

한 물 간 타자로 전락할 위기였다. ‘은퇴’ 운운하는 뒷담화도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퓨처스 리그에서 버텼다.

 

10월이 왔다. 1군에서 불렀다. 7게임에 나갔지만 15타수 2안타로 타율 1할3푼3리와 홈런 1개, 2타점. 올 시즌 전부 14게임에 나가 타율은 고작 1할7푼2리, 홈런 2개와 6타점이 전부였다.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기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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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은 가을을 뜨겁게 달구는 타자다. 2009년 플레이오프, 2011년 플레이오프에 이어 올해 플레이오프에서도 찬스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성근 감독, 이만수 감독, 힐만 감독(오른쪽부터)이 박정권과 하이 파이브를 하고 있다.  

 

그러나 힐만 감독은 ‘가을에 강한 박정권’을 선택했다. 

 

2009년 플레이오프 MVP, 2010년 한국시리즈 MVP, 2011년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던 박정권의 경험과 기록을 인정했다. 지난해까지 포스트시즌 49경기에서 타율 3할1푼9리와 9홈런, 34타점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에선 타율 3할6푼1리와 6홈런, 15타점으로 맹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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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과 2011년 플레이오프 MVP로 뽑혔던 박정권.

 

박정권은 이날 8-8 동점이던 7회말 5번 지명타자 정의윤의 타석부터 대타로 나갔다. 첫 타석은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두 번째 타석은 9회말 1사 1루에서 맞이했다. 넥센은 마무리 김상수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초구와 2구는 바깥쪽 낮은 볼이었다. 포크볼로 유인하는 것에 따라가지 않았다. 3구째 몸쪽 약간 낮은 곳으로 시속 144km의 직구가 들어왔다.

 

박정권은 방망이를 가볍게 돌렸다. 툭 친다는 느낌이었지만 팔로 스루를 끝까지 이어갔다. 공에 힘이 실렸다. 쭉쭉 뻗어간 백구가 가운데 담장을 넘어 전광판 밑에 만든 초록의 작은 정원에 떨어졌다.

 

비거리 125m의 끝내기 2점 홈런. 역대 포스트시즌 8번째이자 플레이오프 3번째 끝내기 아치였다. 왜 ‘가을 사나이’인지 보여줬다. 플레이오프 개인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7개)까지 세웠다. 삼성 이승엽, 두산 홍성흔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이젠 한 걸음 앞서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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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은 다이아몬드를 돌면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면서 헬멧을 벗어 하늘 높이 날렸다. 올 시즌 내내 따라다니던 ‘우울한 기억’을 던져 버렸다.

 

끝내기 홈런 한방으로 데일리 MVP가 됐다. 최정이 빈볼 시비 등으로 어수선했던 흐름까지 말끔히 정리했다.

 

# 2018년 10월 28일 인천 문학구장, 최정의 ‘10월 출루 본능은 만점’

 

SK 힐만 감독이 2차전에선 최정을 3번 지명타자로 결정했다. 3루수로서 수비 부담을 덜고 타격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것이리라.

 

오히려 이런 감독의 배려가 부담스러웠던 탓일까, 아니면 1차전 벤치 클리어링의 여파일까. 최정은 1회말 첫 타석에서 넥센 선발 해커에게 삼진을 당했다. 1-1 동점이던 4회말엔 선두타자로 나갔지만 또 삼진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SK는 강했다. 1-1 동점이던 5회말 1번 김강민이 중월 1점포를 날려 앞서나가더니 6회말에도 6번 이재원이 좌중월 2점포를 터뜨려 4-1로 점수차를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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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정이 28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오주원에게 좌월 1점포를 날린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왼쪽) 최정은 2009년 ㄷ 두산과의 플레이오프부터 17경기 연속 출루로 신기록을 세웠다. 오른쪽은 2012년 10월2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5회말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간 뒤 2루 도루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이날 최정은 6회까지 3타수 무안타. 1차전에서 홈런 1개를 포함한 3타수 2안타 1타점, 2볼넷으로 만든 플레이오프 16경기 연속 출루 타이 기록이 멈출 수도 있었다. 여하튼 승리에 대한 최정의 부담감이 줄었다.

 

7회말 2사 후 이날 4번째 타석에 들어갔다. 넥센은 왼손투수 오주원이 마운드를 지켰다. 초구는 바깥쪽 높은 볼, 2구째 시속 133km의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가운데 높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왔다.

 

최정이 놓치지 않았다. 힘차게 당겨 쳤다. 하얀 공이 왼쪽 담장 너머로 날아갔다. 2게임 연속 아치를 그렸다. 승부에 쐐기를 박는 대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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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방으로 개인 통산 플레이오프에서 17경기 연속으로 출루했다. 플레이오프 연속 경기 출루 신기록을 만들었다. 종전 최다 기록은 롯데와 현대를 거치면서 선수 생활을 했던 전준호의 16경기였다. 

 

SK와 넥센은 올해 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연거푸 벤치 클리어링을 연출했다. 1차전에선 최정에 대한 브리검의 빈볼 시비, 2차전에선 넥센 샌즈의 2루 슬라이딩에 이은 SK 유격수 김성현의 부적절한 손가락 표현이 각각 빌미가 됐다.

 

포스트시즌의 승부는 작은 것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뚜벅뚜벅 알찬 결실을 만들어가는 박정권과 최정이 진정한 ‘가을 사나이’다. (이창호 전문기자/ news@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