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실업자 천국으로 변해버린 1997년을 보내고 맞이한 1998년 새해의 분위기는 ‘암울‘ 그 자체였습니다. 환율의 고공행진과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기업마다 줄도산 사태를 빚고, 거리에는 실업자와 노숙인들이 넘쳐나던 때였으니까요.
마치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던 그 무렵,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드러내는 듯한 느낌의 영화 한 편이 조용히 극장가에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러브 러브’(1998년, 이서군 감독)라는 제목의 영화였습니다.
‘러브’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되는 제목 때문에 얼핏 ‘멜로영화’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포스터와 전단 등에는 ‘러브 러브‘와 함께 노란 색 서체의 알파벳 ’Rub Love’가 씌어 있었습니다. ‘문질러 지우다’는 뜻의 Rub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불안과 허무로 채워질 2028년 서울‘이라거나 ’킬러 나나와 만화가 조한의 지워진 기억‘ 등의 카피에서는 미래의 불안감이 읽혀졌습니다. 어쩌면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들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러브 러브’는 1998년 1월24일, ‘설날 특선프로’로 개봉되었습니다만 3주만에 극장 간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이 해부터는 설날을 공식적으로 3일연휴로 결정한 터라 무려 일주일여의 휴일이 계속되었음에도 관객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한 겁니다.
물론 당시의 분위기가 영화를 보러 극장을 들락거릴 상황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러브 러브’의 영화적 메시지 또한 가슴에 피멍 든 대중을 위로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러브 러브'에서 여주인공 킬러 나나 역을 맡은 이지은.
영화의 배경은 2028년 서울, 주인공은 킬러 나나(이지은)와 만화가 조한(안재욱)입니다.
무심하게 살인청부를 수행하는 킬러 나나는 어느날 자신을 사랑하는 조한의 소유욕에 의해 삶 전체가 뒤바뀌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일정 부분의 일을 끝낸 뒤 중국으로 떠나려던 그녀의 꿈과 정체성마저도 상실하게 된 채로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만화가 조한은 나나에게 첫 눈에 반해 맹목적으로 그녀를 쫓아다닙니다. 자신이 그리는 만화 같은 상상의 세계에 갇혀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그는 나나를 곁에 붙잡아 두기 위해 그녀에게 기억상실 캡슐을 먹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상실의 후유증에 시달리자 냉정하게 그녀를 버립니다.
그에게 그녀는 오직 자신의 만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모델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킬러로 오인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러브 러브'의 킬러 나나(이지은)는 자신의 곁에 두려는 만화가 조한(안재욱)에 의해 기억의 캡슐을 먹고, 기억을 상실하고 정체성을 읽은 채 살아간다.
영화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매일매일을 버티고, 어떻게든 살아내는 게 화두였던 당시의 대중에게는 ‘공염불’과도 같은 얘기였지요. 여성킬러라는 캐릭터나 기억의 캡슐 등의 장치도 생뚱맞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러브 러브’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안재욱과 이지은은 당시 제법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던 배우들이었습니다. 특히 안재욱은 MBC TV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1997년)에서 故최진실의 상대역으로 나와 반항아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며 단박에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차세대 톱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지은이 '러브 러브'의 킬러 나나 역을 맡았다.
특히 ‘별은 내 가슴에’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선보인 노래 ‘포에버’(FOREVER)는 수많은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포에버’를 타이틀곡으로 한 데뷔앨범은 무려 60만 장이나 팔려나갔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수와 연기활동을 겸업하기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안재욱은 ‘별은 내 가슴에’와 더불어 ‘포에버’로 인해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안짜이쉬‘라는 안재욱의 중국이름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류열풍을 몰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안재욱을 한류 1세대로 꼽게 된 배경이 이것이었지요.
안재욱의 몸은 열개라도 모자랄 형편이었습니다.
가요계는 가요계대로, 또 영화와 방송계 역시 저마다 그의 출연 승낙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
당시 안재욱의 매니저였던 김정수 대표(대박기획)는 남다른 기획력과 감각으로 박중훈 최진실 등 톱스타들을 성공적으로 매지지먼트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안재욱도 김 대표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며 의지하고 있었지요.
김 대표는 이 때야말로 안재욱을 ‘스크린 스타’로 포지셔닝할 기회라고 보았습니다. 돈을 생각했다면 후속 앨범을 기획 제작하고, 가수로서의 활동을 더욱 확장시켜야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대부분 안재욱이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펼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만 김 대표는 남들과는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러브 러브’를 안재욱의 첫 스크린 진출작으로 선택한 것이지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러브 러브’의 연출을 맡은 이서군 감독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故박철수 감독의 집요한 권유가 있었지요.
'러브 러브' 출연 당시 가수와 연기 활동을 겸업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안재욱. 특히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안짜이쉬'로 불리며 한류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서군 감독은 1975년생, 당시 스물 셋의 나이였습니다. 대원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돌아온 신예였지요. 무엇보다도 스무살의 나이에 쓴 시나리오 ‘301-302’(1995년, 박철수 감독)로 해외의 여러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일찌감치 ‘천재’라는 소릴 들었던 유망주라는 사실에 더욱 기대를 가졌던 겁니다.
게다가 러브 러브’의 시나리오를 탈고하기 2년 전, 이서군 감독이 발표한 단편영화 ‘자살파티’(1996년)가 금관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경력도 김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러브 러브’의 시나리오를 읽고난 뒤, 김 대표와 안재욱은 잠시 망설여야 했습니다. 러브 스토리인가 하면 미스테리 범죄액션 같고, 그렇다고 SF 판타지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애매한 지점의 시나리오였던 탓입니다.
그런데 이서군 감독과 직접 미팅을 하고난 뒤에는 다시 이서군 감독에게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 영화 출연작에 대한 부담이 적잖았던 안재욱 역시 시나리오에서 궁금했던 부분을 이 감독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스물 셋의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면서 신뢰모드로 돌아섰습니다.
영화 '301- 302'의 시나리오작가인 이서군을 감독으로 데뷔하도록 견인차 역할을 맡았던 故박철수 감독.
이는 이지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짙은 눈썹과 빨갛고 도톰한 입술의 매력을 지닌 이지은은 TV드라마 ‘느낌’(1994년, KBS)과 ‘젊은이의 양지’(1995년, KBS)를 통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리고 영화 ‘금홍아 금홍아’(1995년, 김유진 감독)에서 발군의 연기력으로 비평가들의 찬사를 등에 업고 ‘차세대 톱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해 대종상, 청룡영화상, 영화평론가협회상 등의 영화상 시상식에서 모두 신인연기상을 휩쓸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지은도 이서군 감독과의 만남 이후, ‘러브 러브’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나타냈습니다. 그만큼 이 감독은 자신의 시나리오와 영화에 대한 색깔과 연출 방향을 분명하게 갖고 있었고, 이를 배우들에게도 설득력있게 전달했던 거지요.
이서군 감독이 '러브 러브' 촬영현장을 지휘하는 모습.
그런데 정작 완성된 영화에 대한 평가는 예상과는 달리 악평이 많았습니다.
더러 ‘실험적이며 독창적인 영화’라는 호평도 있었으나 ‘왕가위를 흉내내려다 실패한 빈약한 영화’라는 식의 혹독한 비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느 매체에 “한국영화의 토양 바깥에서 생성된 낯선 이미지들이 포스트 모던 퍼즐과도 같다”며 애매모호한 표현의 비평이 실렸을 때는 일부 관객들이 “궤변”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러브 러브’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이 감독의 연출의지, 혹은 연출변과는 달리 완성도가 낮았다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관객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아무리 IMF 후폭풍의 영향이 있다지만 그래도 설날시즌 개봉된 영화를 관람한 관객 숫자가 8천 명도 안되었다는 건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질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재욱과 김정수 대표의 실망감이 이루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만큼 기대가 컸던 때문이었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재욱의 음반이 ‘러브 러브’의 참패와 상관없이 계속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중국 등지에서의 뜨거운 반향으로 ‘러브 러브’의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안재욱과 김 대표는 ‘러브 러브’ 얘기만 나오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곤 합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영화 '러브 러브'의 제작발표회 모습. 왼쪽부터 이지은, 이서군 감독, 안재욱, 조슈아 클라우스너(가이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