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각 방송사의 TV 쇼프로그램에서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가수 이정현이 새끼손가락에 마이크를 붙이고 열창하는 노래를 앞다퉈 전파에 실어보냈습니다. ‘와’였습니다.
설마 했던 네가 나를 떠나버렸어
설마 했던 네가 나를 버렸어
깊었던 정을 쉽게 잊을 수 없어
늦었어 이미 난 네 여자야
오,,,, 독한 여자라 하지 마
오,,,, 사랑했으니 책임져
바야흐로 2000년을 눈 앞에 두고 세상은 온통 ‘세기말’을 화두로 삼던 때였습니다. 대중음악 역시 세기말의 흐름을 타고 테크노 음악이 트렌드처럼 확산되고 있을 때였는데, 바로 이 ‘와’가 테크노 음악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외눈박이가 그려진 부채, 새끼 손가락에 낀 마이크, 마치 중국 무협영화에서나 봤음직한 나풀거리는 의상, 머리에 꽂은 비녀 풍의 장신구 등. 여기에다 마치 접신(接神)이라도 한 듯 무대에서 신명나게 추어대는 춤은 또 얼마나 전위적이었는지요. 테크노 댄스의 안무 하나 하나에 대중의 시선이 집중됐습니다.
온 우주와 동양의 기운, 무협과 테크노가 혼재된 ‘와’의 컨셉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만큼 압도적이었지요. 단박에 ‘와’는 국민가요로 일파만파 퍼져나갔습니다.
1999년 말을 마무리하는 모든 송년회 자리에서는 ‘와’가 주제가로 등극했습니다. 노래뿐이 아니었습니다. 저마다 이정현으로 빙의한 듯 새끼 손가락을 펼쳐들고 관절을 이리저리 꺾어대며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1999년말의 열풍은 2000년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크고 작은 신년회, 대학가의 신입생 환영회, 장기자랑 등에 이르기까지 ‘와’는 대한민국의 문화현상으로 둔갑했습니다. 오죽하면 어린이들의 재롱잔치, 어르신들의 회갑이나 팔순잔치 등에까지 ‘와’가 단골 레퍼토리로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이정현은 2000년대 초 한국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사실은 당시로부터 3년전, 불과 열다섯의 나이에 5.18 광주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꽃잎’(1996년, 장선우 감독)의 ‘미친 소녀’역으로 데뷔한 신인배우였다는 점이었습니다.
3천여 명의 응모자들 가운데 '꽃잎'의 여주인공 소녀 역으로 발탁된 이정현.
물론 ‘꽃잎’에서의 열연이 영화계 안팎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해 거의 모든 영화상 시상식에서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면서 ‘될 성 부른 떡잎’으로 기대를 모으기는 했지요. 하지만 그녀가 이처럼 세기말 테크노 댄스를 앞세워 가수로서의 역량을, 그것도 전국민의 흥바람을 일으키는 활력 에너지의 원천으로서 대중 앞에 나서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6년, 영화 ‘꽃잎’이 기획되던 무렵을 찬찬히 돌이켜보면 이정현의 등장은 실로 운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꽃잎’의 제작사(미라신코리아) 안병주 대표와 장선우 감독이 여주인공 역에 응모한 3천여 명 가운데 이정현을 찾아낸 것이었으니까요.
광주 민주화 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로 기록된 '꽃잎'에서 공사장 인부 '장'역을 열연한 문성근.
‘꽃잎’은 광주민주화 항쟁 속에서 총탄에 숨진 어머니의 손목을 뿌리치고 도망쳤으나 그 충격으로 미쳐버린 ‘소녀’(이정현)와 그녀를 우연히 만나서 돌보게 되는 공사장 인부 ‘장’(문성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주 민주화 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상업영화였지요.
계엄군에게 구타당한 후, 매장되기 직전의 위기에서 탈출한 소녀는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친 것에 대한 악몽으로 정신을 잃은 채 죽어가고, 이같은 소녀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장’은 서서히 5월 광주의 비극을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 ‘소녀’의 캐릭터는 그만큼 중요했지요. 따라서 여주인공 소녀를 선발하는 과정도 제법 까다로웠습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응모자들을 대상으로 다시 오디션과 카메라 테스트 등을 거치게 했고, 마침내 최종적으로 이정현을 선발했던 거지요.
장 감독은 “연민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와 깊은 눈빛이 광주의 비극과 상흔을 드러낼 여주인공 소녀와 딱 맞아떨어졌다”며 이정현을 낙점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도그럴 것이 오디션에 응모한 많은 지원자들 가운데는 연기 좀 한다는 아역배우들이 즐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3천대 1의 오디션을 뚫고 당당히 여주인공의 영예를 안게 된 이정현의 소감도 많은 매스컴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영화 ‘레옹’에 나왔던, 도발적이면서도 깜찍한 소녀 마틸다 역의 나탈리 포트만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꽃잎’의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여주인공 소녀가 미쳐가는 장면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제가 그 연기를 잘 해냈으면 좋겠어요”
죽어가는 어머니를 버렸다는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미친 소녀를 지켜보면서 5월 광주의 비극을 차츰 이해하게 되는 '장'(문성근).
당시 이정현은 서울 명덕여고 1학년에 재학중이었습니다.
흔히 연기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예고’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연기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생짜신인’이었던 거지요.
바로 이점 때문에 장선우 감독과 미라신코리아 안병주 대표를 제외한 스태프들 대부분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광주항쟁 당시를 재현하는 등 당시로서는 블록버스터급 제작비(23억원)가 투입되는 대작이었던 터라 연기경험이 전무한 신인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지요.
실제로 크랭크인에 앞서 여러 차례의 리딩(대본연습)과 테스트 촬영을 하는 동안 스태프들의 기우가 현실로 드러나는 듯 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선 그녀가 장 감독의 ‘레디, 액션!’ 소리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겁니다. 오디션 할 때의 당찬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대사 한 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럽게만 했으니까요.
오죽 했으면 장 감독 자신이 밀어붙여 선발했음에도 “재, 도대체 누가 뽑았어?”라며 언성을 높였겠습니까. 그리고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이럴 줄 알았다”며 차선책을 찾아보려는 움직임마저 일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주눅들어하던 이정현이 어느새 ‘진짜 미친 년‘으로 둔갑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카메라 앞에서만 ’미친 소녀‘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미친 소녀‘로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기론으로 설명하면 극단적인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 배우가 생각과 감정을 배역에 완전히 몰입시켜 연기하는 기법)였습니다.
'꽃잎'에서 이정현은 그야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듯한 연기로 선배 배우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기차에서 기절한 소녀(이정현)를 병원으로 데려온 대학생(사진 아래,박광정)
영화 속에서 ‘장’(문성근)이 자신을 자꾸만 따라오던 ‘소녀’(이정현)에게 따라오지 말라며 돌을 계속해서 던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문성근은 이정현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으로 돌을 던졌는데, 그만 그 중 하나의 돌이 이정현의 다리에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순간 움찔했던 이정현은 돌 맞아 다리를 질질 끌면서 계속 문성근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원래대로라면 NG였습니다만 장 감독은 아픔을 참고 연기하는 이정현의 모습이나, 돌을 던지고 미안해하던 문성근의 모습이 너무 리얼하여 촬영을 중단하지 않았던 겁니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매우 리얼하게 나왔습니다.
‘꽃잎’에서의 이정현의 연기는 그야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듯 보였습니다. 기차에서 유리창 너머로 귀신을 본 소녀가 발작을 일으키며 이마로 유리를 깨고 기절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이정현이 이마로 유리를 깨고 기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무덤가에서 눈을 까뒤집으며 발작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함께 출연했던 선배 배우들인 문성근 설경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습니다.
‘꽃잎’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광주 금남로에서의 시위장면이었습니다.
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한, 5천여 명의 군중이 참가해서 촬영한 이 장면은 아마도 오래도록 ‘명장면’으로 남을 겁니다.
당시 광주시는 제작진의 금남로 촬영 협조요청에 대해서 ‘금남로 교통통제 관련 시민 공청회’를 열었는데, 여기에 참석한 모든 시민들이 만장일치로 촬영협조를 결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은행 본점에 이르는 500m에 이르는 금남로를 완전히 차단한 채, 탈취한 장갑차와 버스를 앞세운 시위군중의 모습을 비롯해 계엄군의 발포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시민들의 모습, 계엄군의 총에 맞아 피흘리는 ‘소녀’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소녀의 모습 등이 아주 생생하게 촬영될 수 있었지요.
이 촬영에는 시민 자원자 5백여 명과 남총련 소속 대학생 3백여 명, 광주상고 및 여상 학생들 2천5백여 명 등도 참여했습니다. 인근의 상가들이 자발적으로 점포의 문을 닫고 촬영에 협조했던 일화는 당시 뉴스로도 많이 보도됐습니다.
이같은 응원과 협조와 후원 덕분에 ‘꽃잎’은 비평에서도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이정현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뿐만이 아니라 촬영기간 내내 실제로 '미친 소녀'처럼 행동하면서 캐릭터에 몰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