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서울 무지개`

기사입력 [2018-12-2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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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국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기 위해 자행되던 언론탄압 탓에 세간에는 오히려 발 없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신문사나 방송국의 취재기자들은 뉴스로 다루지 못하는 사건들을 은연중에 흘리곤 했지요. 그래서 당시의 소문중에는 사실인 경우가 제법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5.18 광주항쟁에 관한 것이었지요. 12. 12사태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에 의해서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어느 매체도 이 상황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이 광주의 비극은 그 참상을 취재하기 위해 잠입한 외국의 저널리스트들과 현지 주민들에 의해 조금씩 소문처럼 알려지다가 마침내 사실로 밝혀졌지요. 이는 곧 민주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마침내 1987년의 6.29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 당시의 최고 권력인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여배우를 둘러싼 소문, 이른바 ‘X양 사건이 있었습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영부인이 깡패들을 시켜 한창 TV드라마 촬영 중이던 여배우를 납치했다는 사건이지요. 이 사건 역시 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X양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힌 적이 없었고, 심지어는 당사자로 지목된 여배우 또한 해명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발 없는 소문은 천 리를 갔습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좀체로 그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다 ‘X양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가 1989년에 만들어지면서 5공화국 최고 스캔들을 둘러싼 소문은 정점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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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에서 영화제작자 자니 홍(김성수, 오른쪽)은 유라(강리나, 왼쪽)를 영화배우로 성공시키며 '높은 분'에게 소개한다.

 

사실 정권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군사정권의 색채를 띠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를 소재로 삼아 영화화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시중에 막 출간된 유홍종 작가의 소설 서울 무지개‘X양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소식을 접한 김호선 감독이 재빨리 영화화 판권을 사들여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냈던 겁니다. 김호선 감독의 뚝심이었기에 가능한 영화제작이었습니다.


당시 김 감독은 영자의 전성시대’(1975)을 비롯해 겨울여자’(1977) ‘수렁에서 건진 내 딸2’(1986) 등 사회성 짙은 소재를 에로티시즘과 버무려낸 영화를 만들어내면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에로티시즘 영화가 판치던 당시 한국 영화시장에서는 가뭄에 단 비 같은 영화로 평가받았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서울 무지개는 당연히 픽션이었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X양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안고 스크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이야기의 매듭이 풀어지면서 저런 나쁜 놈!” 이라거나 아유, 저거 불쌍해서 어떡해!”라는 분노와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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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에는 당시 전무송(왼쪽)을 비롯해 연극계의 중견배우들이 여러 명 출연했다. 사진 오른쪽은 남자 주인공 준 역의 김주승.

 

고아나 다름없는 유라(강리나)를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온 준(김주승). 두 사람은 서울로 올라와 각자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살아갑니다. 준은 사진작가로, 유라는 모델로 무대에 서면서 서로 성공하자며 다짐합니다.

하지만 스타로 올라서는 성공의 길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 유라. 마침 그때 유라는 자신을 눈여겨 보던 모델기획사의 표 대표(박영규)로부터 제안을 받게 됩니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 유라는 표 대표의 흑심을 알면서도 받아들입니다. 과감한 유라의 선택은 패션쇼의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하게 됩니다.


표 대표는 유라에게 스폰서를 연결시켜주기까지 합니다. 유라는 스폰서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하며 스타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지만 스타덤을 향해 올라가는 것과 반대로 준과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집니다. 유라의 꿈을 잘 아는 준으로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처지. 그녀의 성공을 위해 멀리서 바라보는 준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합니다.

모델로서의 성공이 마침내 영화배우로서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유라. 그러나 유라를 영화제작자 자니 홍(김성수)에게 빼앗긴 표 대표는 유라의 과거를 파헤치려는 음모를 세웁니다. 이를 눈치챈 자니 홍은 유라를 지키는 동시에 표 대표를 파멸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높은 분을 모시고 있는 미스터 큐(이동준)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결국 표 대표는 몰락하고 큐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유라에게 높은 분이 찾아옵니다. 함부로 쳐다보기도 어려운 그분의 기쁨조가 된 유라. 돈과 권력과 명예가 모두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온 것에 희열을 느낍니다.

하지만 더 이상 유라에게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오로지 그 분의 노리개로서만 존재할 뿐. 허위로 가득찬 고통 뿐인 현실에 직면한 유라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애를 씁니다.

기회를 엿보던 유라는 마침내 탈출을 감행합니다만 경호요원들에게 발각되어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되기에 이릅니다.


한편 뒤늦게 유라의 실종사실을 알게 된 준은 신문기자(주호성)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된 유라를 찾아낸 후, 정신병원을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유라를 안고 시골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준. 그러나 그들이 달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트럭에 받혀 그들의 차는 도로변 아래 깊은 계곡으로 쳐박히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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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에서 영화배우로 성공한 유라(강리나)가 출연 영화의 한 장면을 찍고 있는 모습.

 

이상의 내용에서 보듯 영화는 ‘X양 사건이라는 소재, 즉 최고 권력자의 섹스스캔들을 다루긴 했습니다만 영화적 내러티브는 권력의 힘으로 신분상승의 꿈을 펼치던 여주인공이 결국에는 헛된 야망의 좌절을 겪게 되는 스토리로 짜여졌습니다.


김호선 감독 역시 인간의 존엄성이 절대권력 앞에서 얼마나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연출의 변을 밝혔습니다. 김 감독의 이러한 연출변은 어느 정도 관객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이 만신창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멜로영화의 형식으로 그려낸 것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습니다. 특히 여주인공 유라 역을 연기한 신인여배우 강리나의 노출연기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웬만한 에로티시즘 영화들보다도 훨씬 수위가 높았습니다. 신인답지 않은 감정표현과 더불어 과감한 노출연기는 한동안 영화계의 커다란 화제거리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강리나는 이 한 편의 영화로 영화의 내용처럼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많은 미디어들의 인터뷰 공세에 시달렸지요. 미디어의 궁금증은 대체로 영화 속의 캐릭터 유라가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삼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강리나는 시나리오에 나와있는 대로 연기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만 미디어의 선정적 속성은 그녀의 인터뷰를 ‘X양 사건과 연관지어 다분히 흥미 위주의 기사를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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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 속의 영화촬영 장면을 촬영중인 김호선 감독(오른쪽 카메라 밑).

 

그 덕분이었을까요. ‘서울 무지개를 상영하던 당시 서울 을지로 4가의 국도극장 앞에는 연일 관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김호선 감독과 제작사(극동스크린)의 김승 대표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당시 서울 관객 기준으로 집계된 관객동원 기록이 26만명이었습니다. 만일 이 스코어를 요즘의 멀티플렉스 시스템으로 환산한다면 700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울 무지개에 츨연한 배우들은 여주인공 강리나 외에도 남자 주인공 김주승, 박영규, 이동준 등도 모두 습니다. 그 해 대종상 영화제에서 서울 무지개는 작품상과 감독상, 그리고 강리나와 이동준에게 남녀 신인상 트로피를 안겨주었습니다.


서울 무지개에는 또 한 명의 눈길을 끄는 카메오 연기자가 있었습니다. 히트드라마 제조기로 불리는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김 작가는 김 감독을 격려차 서울 무지개의 촬영현장에 잠깐 들렀던 것인데, 김 감독의 요청으로 유라(강리나)가 감금된 정신병원의 여의사로 출연해 시니컬한 연기를 선보였던 겁니다.


강리나는 강렬한 노출연기 이미지의 영향으로 서울 무지개이후에는 클라이막스 원’(1990, 엄종선 감독) ‘변금련’(1991, 엄종선 감독) ‘러브 러브’(1992, 윤석태 감독) 등 에로티시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영화에 주로 출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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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의 촬영 현장에서 여주인공 강리나(왼쪽)의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있는 김호선 감독(오른쪽).

 

하지만 워낙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해서 에로티시즘 영화에서도 나름대로 색깔을 잘 보여주었지요. 다만 1996년에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전공(홍익대 미대, 중앙대 예술대학원)이었던 화가로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 후 여러차례의 개인전을 펼쳐오던 그녀는 몇 년 전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근황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터뷰에서 화가의 삶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적지 않은 상처도 받았다고 털어놓아 걱정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히며 특유의 예술가적 기질을 꿋꿋하게 드러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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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의 촬영현장.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리나(오른쪽)에게 연기지도를 하는 김호선 감독(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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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지개'의 촬영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