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화는 한국영화 황금기를 이끌던 원로배우 故이예춘의 아들인 ‘2세 배우’입니다. 故독고성의 아들 독고영재, 故황해의 아들 전영록, 故최무룡의 아들 최민수, 故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故박노식의 아들 박준규 등과 같이 한국의 대표적인 ‘2세 배우’ 사단을 형성하고 있지요. 이들 중 가장 연장자여서 ‘2세 배우’들의 리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1952년생)지만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특히 ‘예능대세’라는 닉네임을 가질 정도로 TV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지요. 채널A의 ‘나만 믿고 따라와 어부도시’의 고정출연자로, 또 얼마 전에 방영됐던 SBS TV의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 등에서 자신의 진가를 과시하고 있는 겁니다.
‘나만 믿고 따라와 어부도시’에서는 그의 화려한 강태공 경력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50년 이상의 낚시 경력을 바탕으로 프로급 낚시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지요. 얼마전에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무려 1m36cm짜리 물고기(할리벗)를 낚싯대로 잡아올려 함께 낚싯배에 타고 있던 개그맨 이경규와 배우 장혁 등 동료 출연자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이덕화는 비단 낚시 솜씨 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살려내는 ‘히든카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방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만일 이덕화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이처럼 롱런하지 못했을 거라는 평가입니다. 동료 출연자들이 한참 어린 후배들인데도 스스로 먼저 망가지는 ‘모범’을 보이곤 하지요.
또 낚시를 끝내고 돌아온 자리에서는 “부~타악해요!”를 세간에 유행시키던 MC 시절의 뒷이야기 등을 털어놓아 동료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원조 ‘예능돌’의 진가를 보여주겠노라고 작심한 듯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영화 '진짜진짜 잊지마'(1976년, 문여송 감독)에서 임예진과 이덕화.
하지만 이덕화는 ‘예능대세’ 이전에 이미 연기자로서도 굵직한 획을 그어오고 있는 중견배우입니다. 물론 과거처럼 주역을 맡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여전히 지금도 여러 TV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그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방영됐던 SBS TV드라마 ‘착한 마녀전’에서도 항공사 회장의 중후한 캐릭터를 잘 그려냈지요.
배우 이덕화의 전성기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작됐습니다. 그가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난 7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에는 이른바 ‘하이틴 영화’의 붐이 일었습니다. 그때 그는 스물 넷의 나이에 고등학생 역할을 맡아 반항아의 야성적인 이미지로 여고생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청소년 관객들의 인기를 끌었던 ‘진짜 진짜 미안해’(1976년, 문여송 감독)와 ‘진짜 진짜 잊지마’(1976년, 문여송 감독)를 통해 벼락스타로 떠올랐던 겁니다.
이덕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하이틴 영화는 ‘진짜 진짜’ 시리즈 외에도 1976년 한 해에만도 ‘푸른 교실’(1976년, 김응천 감독) ‘7인의 말괄량이’(1976년, 임하 감독) ‘이런 마음 처음이야’(1976년, 이형표 감독) ‘이 다음에 우리는’(1977년, 김응천 감독) 등 무려 여섯 편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영화의 상대 여배우는 모두 임예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1976년도에 이덕화와 임예진은 집에서 잠을 잔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촬영 중인 영화가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새 영화의 촬영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이덕화와 임예진은 여덟 살 차이였습니다. 임예진이 제 나이의 역할을 연기한 데 반해 이덕화는 20대 청년이 고등학생 역할을 연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거의 붙어다니면서 촬영을 함께 하다보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친남매처럼 가까워졌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 후 TV 드라마에서도 여러차례 함께 출연하면서 남매의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국민드라마로 일컬어졌던 MBC TV의 ‘사랑과 진실’(1984년)과 ‘사랑과 야망’(1987년)에서는 둘 다 커다란 인기를 얻는 전기를 마련했지요.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년, 강우석 감독)'에 출연한 이덕화.
이덕화는 하이틴스타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중,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를 겪게 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 수 있는 오토바이 사고였습니다. 1977년 한창 바쁜 스케줄에 매어있던 그의 오토바이 사고는 신문과 방송에서 제법 비중있는 뉴스로 다뤄졌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이 사고로 그는 꼬박 2년여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여러차례의 수술을 거듭하면서 중환자실에서만 6개월여를 지냈습니다. 이 당시는 매일 매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오갈 때였습니다. 그의 병상에는,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되어 있는 김보옥씨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부부관계가 아닌 그저 친구 사이였는데, 2년 넘는 병상 생활을 함께 하면서 부부의 연으로 이어진 거지요.
이덕화의 필모그라피에서도 2년여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오토바이 사고에서 회복되어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가 ‘맨발의 청춘77’(1979년, 김수형 감독)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토바이 사고로 큰 고비를 넘긴 이덕화에게 주어진 역할이 오토바이를 타는 권투선수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덕화의 이미지가 오토바이와 잘 어울리는 마초 스타일이었기 때문일 터입니다. 그리고 역시 여주인공은 이덕화와 콤비를 이워왔던 임예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기대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덕화의 야성적인 매력을 앞세운 ‘티켓 파워’가 2년여의 오토바이 사고 공백과 함께 약해졌던 탓입니다. 이후에 이덕화를 주인공을 캐스팅한 ‘내일 또 내일’(1979년, 임권택 감독) ‘밤이면 내리는 비’(1979년, 박철수 감독) 등의 영화들도 관객들의 호응을 별로 얻지 못했습니다.
영화 '불의 나라(1989년, 장길수 감독)'에 출연한 이덕화.
이덕화에게 두 번째 전성시대가 찾아온 것은, TV드라마를 통해서였습니다. MBC TV드라마 ‘사랑과 진실’과 ‘사랑과 야망’에서 이덕화는 자신의 존재감을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특히 ‘사랑과 야망’에서는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박태수란 인물을 멋지게 그려냈습니다. 이때의 카리스마로 이덕화는 두 번째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를 원작으로 한 영화 ‘접시꽃 당신’(1988년, 박철수 감독)에서도 이덕화의 연기내공이 빛났습니다. 두 번째 전성기임을 입증하듯 그는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불치병으로 떠나보내게 된 시인의 애끓는 모습을 절절하게 연기해냈습니다.
그의 연기 에너지는 계속 영화를 통해 뿜어져 나왔습니다. ‘불의 나라’(1989년, 장길수 감독)를 비롯해 ‘물 위를 걷는 여자’(1990년, 박철수 감독)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1990년, 강우석 감독) ‘개벽’(1991년, 임권택 감독) ‘살어리랏다’(1993년, 윤삼육 감독) 등의 영화를 통해 이덕화는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냈습니다. 이들 영화에서는 예전처럼 반항적 야성미나 카리스마를 앞세우지 않았지요.
특히 ‘개벽’에서 백성들에게 인간과 역사에 대한 각성을 일깨우는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역을 맡아 연기의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임권택 감독 역시 그의 연기에 대만족을 나타냈지요. 이덕화는 ‘개벽’에서의 열연으로 그해 대종상 영화제와 춘사영화상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또 ‘살어리랏다’에서의 망나니 역할을 실감나게 그려내면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이변’도 낳았습니다. 국내에서는 아무도 그의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이덕화 역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상소식만 전해 들어야 했지요. 19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지 4년만의 낭보였습니다.
2000년 한국과 일본 연예인 친선축구경기에서 맹활약 하는 이덕화.
이덕화의 베우 인생에서 본인 스스로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이력이 1996년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입니다. 그의 주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뛰어드는 걸 만류했습니다만 그는 강행했고, 결국 선거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3년여에 걸친 잠적생활이 이어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취미인 낚시에만 매달려 살았습니다. 훗날 그는 이 선거를 두고 “선거는 그냥 연기로만 하는 건데, 세상물정을 잘 몰랐다”고 회고했지요.
다행히 그는 선거 실패 이후 5~6년의 시간을 연기 충전의 기회로 잘 활용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그의 연기인생이 다시 화려하게 펼쳐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겁니다. 특히 2005년의 MBC TV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는 정치군인 전두환 역할을 기막히게 그려내 ‘빙의’했다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의 딸(이지현)과 함께 ‘부녀 배우‘로 즐거운 연기 인생을 펼쳐가고 있지요.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에게서는 여전히 야성적인 사내의 포스가 살짝 드리워져 있습니다. 오죽하면 그의 전성시절에 찍었던 내의 ’트라이‘나 건강음료 ’로얄디‘의 CF장면이 몇십년을 뛰어넘어 개그의 소재로 패러디되겠습니까?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쩌면 CF의 대사가 아니라 배우로서 살아온 이덕화의 인생 모토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2005년 MBC드라마'제5 공화국'에 전두환역으로 출연한 이덕화.
2005년 유니세프 기금 마련을 위한 연예인 축구팀과 국회의원 축구팀의 친선경기에 참여한 이덕화 플래이.
2006년 독일 월드컵 성공기원 연예인 히말라야 원정대 단장으로 참여한 이덕화.
2006년 드라마 '대조영'에서 설인귀 역으로 출연한 이덕화.
2006년 KBS 시트콤 '웃는 얼굴로 돌아보라'에서 한강에 뛰어든 이덕화.
2008년 '2007년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이덕화.
2008년 '제2회 충무로 국제영화제'에서 딸 이지현과 레드카펫을 밟고 있는 이덕화.
'2008년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은 이덕화.
2009년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에서 강감찬역으로 출연한 이덕화.
2010년 KBS드라마 '전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덕화.
2010년 류시원 결혼식에 참석하는 이덕화.
2012년 MBC 드라마 '메이퀸'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덕화.
2013년 배우 김재원 결혼식에 참석하는 이덕화.
2015년 MBC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이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