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겨울 나그네`

기사입력 [2018-08-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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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천재작가로 기억되는 최인호는 대중의 사랑을 크게 받았던 작가입니다. 독서와는 담 쌓았다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소설 한두 권쯤은 읽었을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영화나 TV드라마로 만들어진 그의 소설 또한 이루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아마 이 부문, 소설의 영상화 기록도 그가 최다일 겁니다


한편으로는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양희은 등 70년대 통기타 가수들과 더불어 7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처럼 일컬어지기도 했지요. 이 또한 그의 소설들이 대중적이지만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잘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보들의 행진고래사냥이 대표적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시대의 아픔과 방황 속에서 낭만적 고통을 겪던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로 위로를 전해주던 신문연재소설 겨울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당시 겨울 나그네는 동아일보(1984)에 연재되었는데, 특히 대학생들은 버스 정류장 가판대에서 신문을 구입해 교정으로 걸어가면서 읽곤 했습니다. 신문연재소설이 대부분 그렇지만 겨울 나그네는 유난히 다음 회가 기다려질 정도로 감질나게 끝나곤 했지요


당연히 겨울 나그네는 연재과 끝남과 동시에 출판되었고, 영화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최인호 원작소설의 영화화는 영화계에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별들의 고향’(1974, 이장호 감독)을 비롯해 적도의 꽃’(1983, 배창호 감독) ‘깊고 푸른 밤’(1985, 배창호 감독) 등의 영화들이 성공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최인호 작가 또한 자신의 원작을 시나리오로 옮기는 작업에 대단한 흥미와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화 연출을 맡게 될 감독과 연출팀이 꾸려지는대로 합숙작업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시나리오팀을 직접 진두지휘 했지요. 시퀀스 하나, 대사 한 줄까지도 세심하게 챙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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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의 주인공 현태 역의 안성기(왼쪽)와 민우 역의 강석우(오른쪽).

 

겨울 나그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최 작가는 겨울 나그네의 감독으로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곽지균을 제작사(동아수출공사)에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배창호 감독의 연출팀과 여러 편의 시나리오 작업을 해오면서 곽지균의 영화적 재능을 일찌감치 간파했기 때문이지요


시나리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여기에다 캐스팅 또한 화려한 라인업으로 꾸려졌습니다. 당시 영화계에서는 최인호 사단으로 불릴 만큼 최 작가의 파워가 막강했습니다. 저마다 최인호 사단에 들어가고 싶어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환경이었으니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을 까닭이 없었지요


세 남녀의 어긋난 사랑과 비극을 담아내는 주인공들에는 당대 최고의 배우인 안성기, 이미숙, 그리고 강석우가 캐스팅됐습니다. ‘겨울 나그네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캐스팅, 촬영기간 내내, 그리고 촬영 종료후 개봉될 때까지 끊임없이 화제를 뿌렸습니다. 어찌보면 영화제작사(동아수출공사)나 촬영팀에서 화제거리를 만들어냈다기 보다 오히려 여러 매체에서 앞다퉈 기사가 될 만한 아이템을 찾아 쏟아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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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안성기, 왼쪽)는 다혜를 만나게 해달라는 민우(강석우, 오른쪽)에게 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지나간 그 시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을 따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이 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이윽고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 61악장의 선율과 함께 가을 캠퍼스를 자전거로 달려가는 의대생 민우(강석우)가 등장합니다. 이어서 민우의 자전거가 음대생 다혜(이미숙)와 부딪치고 다혜의 악보가 바람에 흩날리면서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민우와 다혜의 첫 사랑이 무르익어가는 데는 언제나 자유분방한 복학생 현태(안성기)가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어느날 민우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수선한 가운데 친모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됩니다. 친모의 흔적을 찾아 동두천 미군기지촌으로 들어간 민우는 이모(김영애)를 만나 모든 이야기를 듣습니다. 해방 이후 겪어야 했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인 기지촌에서 민우는 은영(이혜영)을 통해 위안을 얻게 됩니다.

한편 갑자기 잠적한 민우로 인해 혼란에 빠진 다혜는 민우를 잊지 못해 괴로운 나날을 보냅니다. 그나마 현태가 그녀의 곁을 지켜줍니다. 그런데 점차 현태에게는 민우에 대한 감정과 다혜에 대한 새로운 사랑의 감정이 부딪치는 갈등이 찾아옵니다.


민우는 가끔씩 다혜에 대한 그리움으로 서울에 와서 다혜 주위를 맴돌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기지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게 됩니다.

시간이 흐른 후, 현태는 민우의 소재지를 찾았다면서 다혜에게 함께 가보자고 권합니다. 갈등하던 다혜가 가까스로 기차역에 도착하고, 현태와 다혜는 시골에 살고 있는 민우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은영과 그의 아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낚시로 소일하고 있는 민우와도 만납니다. 다혜는 첫 사랑의 아픔과 그리움을 남겨둔 채 민우와 헤어집니다.

민우는 죽도록 그리워하던 다혜와 헤어진 뒤 더욱 괴로운 고독 속으로 빠져듭니다. 다혜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던 민우는 끝내 현태를 찾아가 다혜를 만나게 해달라고 절규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현태는 다혜의 주소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절망하는 민우. 현태와 다혜의 결혼식까지 성당에서 지켜본 민우는 삶의 의미마저 잃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몇 년 지난 뒤, 은영이 현태와 다혜에게 연락을 해옵니다. 그리고 민우의 아들을 두 사람에게 맡깁니다. 이때 현태가 민우의 아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부터 너를 피리부는 소년이라고 부르마

피리부는 소년은 과거 빛나던 시절, 현태가 민우를 부르던 애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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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의 영화포스터.

 

1986년 개봉된 겨울 나그네는 청춘관객들로 넘쳐났습니다. 원작 소설을 읽었거나, 영화로 처음 본 관객들 모두 세 남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에 눈물을 훔쳤습니다. 당시 36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요즘으로 따지면 거의 1천만명에 육박하는 스코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스토리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멜로영화에서 보여줬던 천편일률적인 화면과는 그야말로 때깔이 달랐습니다. 세련된 영상과 주옥같은 대사들이 관객들을 영화에 흠뻑 빠지게 한 겁니다. 여기에다 이 영화에는 가슴을 파고 드는 음악들이 넘쳐났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보리수는 기본이었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곽 감독은 장면장면마다 기막힌 선곡으로 관객들을 영화의 바다에 풍덩 빠뜨렸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팝가수 데미스 루소스의 ‘Follow me’와 영국 출신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 레어 버드의 ‘Sympathy’겨울 나그네의 개봉 이후 음반가게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겨울 나그네로 일약 귀공자 배우로 떠오른 민우 역의 강석우는 훗날 “‘겨울 나그네의 출연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회고했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요. 당시 강석우는 신문연재소설에 흠뻑 빠져서 읽었던 매니아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설의 주인공으로 자신이 캐스팅됐으니,,, 더군다나 그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고, 소설 속에서 처음 등장할 때의 민우는 22살이었으니까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겠지요


요즘 CBS FM 라디오의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라는 프로그램의 DJ를 진행하고 있는 강석우는 얼마전 강석우 청춘 클래식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 음악프로그램에 소개된 음악과 에피소드들을 묶어낸 책인데, 그는 이 책에서 겨울 나그네에서 OST로 사용된 ‘Follow me’를 두고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원곡은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2악장인데,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동반자이자 친구이자 형이었던 곽지균 감독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아픈 후회가 밀려오곤 합니다

강석우는 겨울 나그네에서의 인연으로 곽감독과 연이어 두 여자의 집’(1987)상처’(1989)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만큼 곽 감독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거지요.


곽감독은 겨울 나그네로 성공적인 감독데뷔를 이룬 뒤, ‘두 여자의 집’(1987) ‘상처’(1989) ‘그후로도 오랫동안’(1990) ‘젊은 날의 초상’(1991) ‘장미의 나날’(1994) ‘깊은 슬픔’(1997) ‘청춘’(2000)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등 줄곧 멜로영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2010,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져 많은 영화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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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혜 역의 이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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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우 역의 강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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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태 역의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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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의 세련된 영상 연출로 故곽지균 감독은 성공적으로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