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저녁 무렵, 최지우의 팬 카페 ‘스타지우’에는 그녀가 직접 손으로 쓴 편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타지우 가족 여러분, 지우에요.
이렇게 오랜만에 손편지를 쓰려니, 참 쑥스럽기도 하고 떨리네요.
오늘은 제가 조금은 갑작스럽지만 너무나 행복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3월 29일,,, 오늘은 제가 인생의 반려자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약속한 날입니다. 오늘 오후, 가족분들만 모시고 조용하게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이제 저는 사랑하는 그분과 함께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예쁘게,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미리 소식을 알려드리지 못한 점이 제일 마음에 걸렸답니다. 더 일찍 알려 드렸어야 했는데,,, 참석하신 가족분들과 공인이 아닌 그분께 혹시나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점 양해 부탁드려요.
오랜 시간 늘 한결같이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여러분께서 저의 결혼을 축복해주신다면 더없이 행복한 날이 될 거 같습니다!“
마흔 셋의 나이에 품절녀가 되었다는 소식을 자신의 팬카페에 알리자 그녀의 결혼식은 금세 세간의 빅뉴스로 떠올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그녀에게선 아무런 낌새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그녀의 절친으로 알려진 고소영 유호정 송윤아 한가인 한예슬 등의 동료배우들조차 그녀의 결혼식을 몰랐겠습니까.
그만큼 최지우는 자신의 팬카페에 쓴 편지처럼 가족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결혼식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연예인 하객들도 전혀 없었지요. 철저한 스몰웨딩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9살 연하의 사업가라거나, 두 사람의 교제가 2~3년쯤 되었다는 등의 사실 조차도 결혼식 이후 여러 달이 지난 후에야 알려졌을 정도였지요. 공인이 아닌 남편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세심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최지우의 깜짝 결혼은 그녀의 출연 영화 ‘좋아해줘’(2016년, 박현진 감독)에서 보여줬던 캐릭터를 연상케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깐깐하고 매사에 철두철미할 것 같지만 실상은 속없이 착한 노처녀 스튜어디스’가 그녀의 역할이었는데, 사랑에 실패한 노총각 셰프(故김주혁)와 펼쳤던 영화 속 러브라인이 웬지 그녀의 실제 모습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 겁니다. 함께 밥을 먹고 고민을 나누는 등 일상을 공유하면서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영화 속의 모습이 최지우의 결혼스토리와 닮았기 때문이지요.
아니 어찌보면 ‘좋아해줘’에서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와 TV 드라마들에서 보여준 역할들 대부분이 그런 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멜로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나 ‘착한 히로인’이라는 이미지는 결국 그녀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요.
‘착한 히로인’의 이미지처럼 그녀는 촬영현장에서도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이 남다릅니다. 선후배 배우들에 대한 예의는 물론 촬영스태프들의 고생과 수고를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촬영 스태프들을 위한 회식 ‘쏘는’ 걸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지요.. 최지우가 출연하는 작품의 촬영현장의 분위기가 늘 화기애애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최지우는 1994년 MBC TV의 23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과 얼굴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쯤 지난 1996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디아볼릭’의 개봉에 맞춰 서울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에서 열린 ‘한국의 이자벨 아자니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부터였지요.
그리고 그녀는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1996년, 김태균 감독)에 캐스팅되면서 영화배우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녀는 정육점의 농아(聾啞) 여주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아내(심혜진)의 가출로 방황하던 남자(여균동)가 무뚝뚝하게 고기를 써는 정육점 여주인의 모습에 반해 새로운 사랑에 눈 뜨게 된다는 ‘막중한 책무’를 무리없이 소화해냈지요.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의 키스를 격렬하게 나누는 장면에서 그녀는 과감하게 에로틱 무드를 이끌어냈습니다. 전혀 신인답지 않았습니다. 대사도 없고. 출연분량도 여주인공 심혜진에 비해 턱없이 적었음에도 최지우라는 신인배우의 존재감 만큼은 확실하게 각인시켰지요.
그 다음 해에 출연한 KBS TV 드라마 ‘첫 사랑’(1997년)을 통해서는 안방극장의 시청자들의 눈도장도 받게 되었습니다. 전무후무한 시청율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국민드라마로 떠올랐던 ‘첫사랑’(1997년)에서 그녀는 집안의 복수에 여념이 없는 배용준을 짝사랑하는 부잣집 딸로 나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처음 만난 배용준과 서툴고 수줍은 짝사랑을 고백하는 정도로 끝났습니다만 훗날 한류 드라마의 원조 격인 ‘겨울연가’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제대로 된 러브스토리를 펼쳤지요. 어찌보면 배용준과의 인연은 숙명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지우는 ‘첫사랑’의 후광을 업고 다시한번 영화 쪽으로도 진출했습니다. 스릴러 영화인 ‘올가미’(1997년, 김성홍 감독)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박용우의 아내이자 故윤소정의 며느리로 나와 섬뜩한 상황에 내몰리는 ‘스릴러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아들을 남자로써 사랑하는 삐뚤어진 모성의 시어머니로부터 “넌 내 아들에게 사준 장난감에 불과해!”라며 모멸을 받는 것은 물론 태연하게 아들을 목욕시키는 모습까지 지켜보게 되는 충격적인 장면들을 무난하게 연기해냈습니다. 대사 구사력은 다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스릴러 영화에 어울리는 표정연기는 상당히 인정받았습니다. 그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과 촬영감독협회에서 주최하는 황금촬영상의 ‘신인연기상’을 수상했으니까요.
사실 최지우에게는 여러 비평가나 관객, 또는 시청자들로부터 ‘혀 짧은 발음‘에 대한 지적이 곧잘 따라다녔습니다. 그녀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SBS TV드라마 ’아름다운 날들‘(2001년)에서 이병헌과 공연을 펼칠 때, 그 지적이 최고치에 달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의 열연으로 최지우는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만 극중 이병헌에게 ’실땅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은 개그 프로그램 등에서 패러디 될 정도로 화제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2002년, 마침내 최지우는 ‘지우히메‘라는 한류 닉네임을 갖게 되는 KBS TV드라마 ’겨울연가‘와 만났습니다. 배용준과 다시 조우한 겁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첫 사랑‘에서는 ’맛보기‘ 정도였던 러브스토리가 ’겨울연가‘에서는 그야말로 절절하게 펼쳐졌습니다.
사실 ‘겨울연가’가 국내에서 방영될 무렵에는 공중파 방송국 3사의 야심작(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SBS에서는 ‘여인천하’, MBC에서는 ‘상도’를 각각 방영하고 있던 가운데 ‘겨울연가’가 후발주자로 뛰어들면서 세 편의 드라마 모두 20% 안팎의 시청율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연가’의 종방 후 1년쯤 지난 2003년, ‘겨울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NHK의 위성방송에서 방영되면서 ‘일’이 났습니다. 일본 시청자들, 특히 주부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재방영에 재방영을 거듭하면서 한류의 대표적인 드라마로 입지를 굳히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배용준이 ‘욘사마’, 최지우가 ‘지우히메’로 불리면서 한류스타로 우뚝 서게 됐습니다.
하지만 최지우는 한류스타로 떠오르기 전에도, 또 한류스타로 천정부지의 인기를 구가한 이후에도 별 차이 없이 꾸준하게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특히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 이명세 감독)에는 살인범 장성민(안성기)의 애인으로 나와 안성기 박중훈 장동건의 틈바구니에서 분전(奮戰)을 펼쳤으며, 이병헌과 스크린에서 조우한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년, 장현수 감독)에서는 파격적인 노출연기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SBS TV드라마 ‘천국의 계단’(2003년)에서는 권상우 신현준과 함께 신파멜로의 진수를 보여주면서 ‘멜로의 여왕’ 이미지를 굳건하게 구축했습니다. 물론 좌절도 적지 않게 겪었지요. MBC TV드라마 ‘에어시티’(2007년)와 SBS TV드라마 ‘스타의 연인’(2008년), MBC TV드라마 ‘지고는 못살아’(2011년) 등의 드라마는 거의 참패(시청율 저조) 수준이었습니다만 SBS TV ‘수상한 가정부’(2013년)를 통해서는 성숙한 연기력을 앞세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최지우는 한결같은 배우입니다. 한류스타라고 해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서 위세를 보인 적도 없었습니다. 늘 변함없는 자세로 배우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습니다. 그녀의 스몰웨딩이 그걸 증명해보였지요.
그래서 영화 ‘좋아해줘’에서 성실한 여배우 최지우를 만날 수 있었고,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2015년)이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7년)을 통해서는 최지우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2009년 '스타 에비뉴' 오픈행사에 참석한 최지우.
영화 '여배우들(2009년, 감독 이재용)'의 시사회에서 윤여정의 '소심하다'는 발언에 폭소하는 최지우.
2018년 골든듀 포토행사에 참여한 최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