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극장] 아역배우로 시작한 48년 연기경력의 손창민

기사입력 [2018-07-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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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배우 출신의 손창민은 2018년 기준으로 연기 경력 48년째입니다. 가히 원로급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배우들 가운데 손창민처럼 아역배우로 시작해서 하이틴 스타, 그리고 성인 연기자가 되고 난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연기생활을 이어오는 경우는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1970년대 화제를 낳았던 영화 꼬마신랑’(1971, 나봉한 감독)에서 어린 신랑으로 주목받았던 김정훈이나 얄개 시리즈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이승현 등 기대를 모았던 스타급 아역배우들은 어쩐 일인지 성인 연기자로는 성공하지 못한 채 사라졌습니다


물론 아역배우 출신이면서 오랜 세월 동안 성인 연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배우가 안성기와 강수연입니다.

안성기는 김지미의 스크린 데뷔작인 황혼열차’(1957)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아역배우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학업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졸업과 군 복무 이후에 다시 연기생활을 재개했습니다. 말하자면 하이틴 배우의 시절은 없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네 살 때 처음 TV 카메라 앞에 섰던 강수연이 비교적 최근(2010)까지 연기활동을 해온 셈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2010달빛 길어올리기’(임권택 감독)의 출연 이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영화행정가로 더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아역배우 시절을 지나 성인 연기자가 되어 현재까지 연기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민정 문근영 장근석 유승호 양동근 등은 아직 40대의 나이를 넘어서지 않은 청년들이므로 손창민에 비견될 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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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1991년,감독 이석기)'에 출연한 손창민.

  

말하자면 아역배우 출신으로 지금까지 쉼 없이 연기활동을 펼쳐온 경우는 손창민이 거의 유일한 셈입니다. 그는 48년 동안 연기생활을 해오는 동안 휴지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부단없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온 것으로도 영화와 방송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손창민은 연말 S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일일 & 주말드라마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한동안 침체일로를 걸어온 SBS TV 주말드라마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손창민은 독선적인 재벌회장 구필모 역을 맡아 상대역인 민들레 역의 장서회와 감칠맛 나는 멜로연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손창민은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중년의 로맨스로 설렘을 안겨주기도 하고, 푼수어린 개그 연기로 배꼽을 쥐게 하면서 드라마의 재미를 견인했습니다. 집안에서나 회사에서는 근엄하기 짝이 없는 구필모 회장이지만 민들레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변하는 이중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펼쳐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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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주 특별한 변신(1994년,감독 이석기)'에 이혜영(왼쪽)과 함께 출연한 손창민.

  

사실 손창민에게는 오랫동안 훈남의 이미지가 당연하게 따라다녔습니다. 아역배우에서 하이틴 스타, 성인 배우로 성장해오는 동안 그는 늘 멋진 주인공이었으니까요. 특히 90년대 초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1990, 장길수 감독)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1991, 이석기 감독)에서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인 강수연과 이혜숙을 파트너로 삼아 뜨거운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이문열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여기에서 손창민은 사랑하는 여인을 좇아서는 지옥까지라도 따라갈 수 있다는 외골수 주인공(임형빈)의 캐릭터를 절절하게 그려냈습니다. 때로는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또 때로는 신기루 같은 사랑에 집착하는 편집증을 극명하게 표현해냈던 겁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아름다운 풍광의 스위스 호반을 배경으로 목숨처럼 사랑했던 여인(서윤주역 강수연)을 끝내 총으로 쏴야 했던 상황을,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서 죽어가는 그녀로부터 사랑했다는 말을 듣는 것으로 영원히 자신의 여인으로 품어안는 장면은 그를 훈남을 넘어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게 했습니다.

당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던 상당수의 여성관객들은 이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한 마디씩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자가 저런 복을 받지?” 영화 속의 손창민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강수연을 사랑한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지요


손창민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의 인기 상승세를 업고 외국 로케이션 촬영에 또한번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미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된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술과 도박과 엽색으로 살아가는 전직 고관 2세 미국교포 박준이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에 젖어 마약과 도박으로 인생을 탕진하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리고 스크린에 비쳐진 손창민은, 그대로 박준이었습니다. 연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박준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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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1990년대)의 손창민 모습.

  

90년대 초반 영화계에서 손창민의 활약은 이처럼 눈부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인가부터 그는 연기의 무대를 TV쪽으로 슬그머니 옮겼습니다. 이는 그의 결혼(1991)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기도 했습니다.

영화 쪽에서는 여전히 그의 캐스팅을 위해 시나리오를 건넸습니다만 한동안 그의 작품 선택은 TV드라마였습니다. KBS TV드라마 ‘3일의 약속’(1991)이 그랬고, SBS TV드라마 작별’(1993)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MBC TV의 주말드라마 사랑과 결혼’(1995)에서는 김희애 이영애 김혜수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공연하기도 했지요.

그 사이 영화에는 사랑하고 싶은 여자 & 결혼하고 싶은 여자’(1993, 김호선 감독)아주 특별한 변신’(1994, 이석기 감독) 등 두 편에만 출연했습니다. 이는 이석기 감독과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에서 호흡을 맞췄던 인연과 미국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되는 촬영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당시 비평가들의 평가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지요. 그리고 손창민도 신혼 초였던 터라 외국 촬영을 가야하는 영화출연에는 다소 부담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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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드라마 '신돈' 촬영현장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손창민.
  

흥미로운 사실은 영화 쪽에서의 침체와는 달리 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손창민의 연기세계TV드라마를 통해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KBS TV드라마 바람의 아들’(1995)을 비롯해 MBC TV 드라마 의가형제’(1997)내가 사는 이유’(1997), ‘추억’(1998) 등이 그의 출연을 통해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었던 작품들입니다. 이들 작품에서 눈 여겨 볼만한 변화는 10대를 거쳐 20, 30대에 이르는 동안 구축해온 멋진 사내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던져버렸다는 점입니다


특히 정치드라마였던 바람의 아들에서는 이병헌 신현준 김희선 등과 함께 출연하면서 철저한 악역으로 파격 변신했습니다. 이복동생 권산(신현준)의 애인을 빼앗는가 하면 자신의 앞길에 방해되는 인물들을 가차없이 죽음으로 내모는 권유승 역을 섬뜩하게 연기했습니다. 쉽지 않았을 선택 같았으나 손창민은 배우는 거듭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길을 새롭게 개척했습니다.


이후 손창민은 자신의 신념처럼 다양한 작품과 다양한 캐릭터로 끊임없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해왔습니다. 지난 20108월에 방영된 MBC TV드라마 로드 넘버 원에서도 무자비한 성격과 맹목적인 적대감을 가진 오종기 상사역을 맡아 극중 소지섭과 달리 전쟁의 상처와 광기와 처절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종영 후에 그는 오종기 상사를 좀더 악랄한 캐릭터로 만들어내지 못해 아쉽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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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S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스페셜부문 우수연기상을 수상한 손창민.

 

손창민은 여섯 살 때 부산집 근처에서 영화촬영하는 걸 구경하다가 신성일(강신성일)에 의해 아역배우로 픽업됐습니다. 신성일이 감독으로 제작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1971)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길에 들어섰던 거지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화려했던 하이틴 스타를 거쳐 성인 연기자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는 분명 정상급 배우로 평가받았습니다만 한번도 스타인 양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품입니다. 소신이기도 합니다


인기는 담배연기처럼 금세 사라집니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거듭나겠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배우로 늙어가고, 죽을 때까지 연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손창민을 이렇게 배우론을 피력했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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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드라마 '키드갱'(2007년)의 기자간담회에서 아역배우 안예준을 안고 있는 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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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영화 '상사부일체'(2007년,심승보 감독)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큰 형님 역의 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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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들이 온다(2007년,감독 강석범)' 제작발표회 고사에 참석한  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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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MBC TV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의 제작발표회에 나선 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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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열혈 팬인 손창민이 2008년 플레이오프(두산 VS 삼성) 1차전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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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MBC TV드라마 '로드 넘버 원'의 손창민 스틸컷(사진_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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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BS TV드라마 '영광의 재인' 손창민 스틸컷(사진_김종학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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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MBC TV드라마 '마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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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MBC TV드라마 '오오라 공주' 제작발표회에서의 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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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송혜교, 송중기 결혼식에 참석하는 손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