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은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감독’이지요. 그의 오늘날을 있게 한 영화가 ‘올드보이’(2003년)라는 건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올드보이’가 2003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후 박찬욱 감독도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지요.
‘올드보이’ 이후에 만들어진 박 감독의 영화들은 더 이상 ‘국내용’으로만 소비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해외에서의 호평에 힘입어 그렇게 된 것이지만 나중에는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인터내셔널 마켓을 겨냥한 연출과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친절한 금자씨’(2005년)를 비롯해 ‘박쥐’(2009년) ‘파란만장’(2011년) ‘스토커’(2013년) ‘아가씨’(2016년) 등의 영화가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에서는 박찬욱 감독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났지요. 덩달아 박 감독의 영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매니아들도 국내를 넘어 해외 곳곳에서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런가하면 과거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영화들도 현재로 소환되어 새롭게 조명되었습니다. 이 컬럼의 연재 초기에 소개했던 박 감독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년)이 그랬고, 또 오늘 소개하는 영화 ‘3인조’(1997년)가 그랬습니다. 박 감독의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저주받은 걸작’으로까지 평가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3인조'에서 단순무식한 건달 문 역으로 열연한 김민종.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과 두 번째 영화 ‘3인조’ 둘 다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당시 영화계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세 번째 작품의 감독을 맡게 될 확률은 그리 많지 않았지요. 그런데 전 됀지 자신감이 있었어요. 아, 이제 알 것 같다, 뭐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감각도 부족하고 철이 덜 들어서, 당시 내가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었는지 실감을 못한 거 같아요. 하지만 그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통과한 것인지도 모르죠”
필자의 졸저 ‘나는 영화가 좋다’(2011년, 지식의 숲)의 출간을 위해 만났던 박 감독과의 인터뷰 당시 소회입니다.
실제로 박 감독은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 연출 이후, 5년여를 쉰(?) 끝에 두 번째 영화 ‘3인조’의 연출기회를 얻었습니다. ‘3인조’를 연출하기까지 그가 처한 환경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물론 데뷔작에서 보여준 영화적 재능을 인정받아 꾸준히 영화연출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가 쓴 시나리오들은 영화화 도중 여러차례 엎어졌습니다.
오죽하면 박 감독이 “충무로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짜고서 나를 골탕 먹이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털어놓았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건 이런 상황에 직면했으면서도 박 감독은 전혀 위축되거나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시나리오가 엎어질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다시 쓰고, 또 쓰면서 수없이 많은 영화들을 자신의 상상공간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겁니다.
다만 일정한 수입이 없어서 시나리오 쓰는 시간 외에는 ‘또 다른 글쓰기’와 ‘강의’로 이 시기를 버텼습니다. 그는 수많은 신문과 잡지에 영화비평을 열심히 썼습니다. 또 라디오와 케이블TV 등에 나가 영화해설이나 강의를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이렇게해서 출간된 게 그의 첫 비평집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박찬욱의 비디오드롬’(훗날 ‘박찬욱의 오마주’로 수정판이 출간됨)입니다.
흥행대박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년, 장선우 감독)로 데뷔하여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하던 정선경은 '3인조'에서 마리아 역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3인조’는 이러한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제목처럼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가난으로 인해 악기를 전당포에 팔아넘기는 악사, 어린 시절 버려져 엄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건달, 수녀가 되려다 아버지에게 강간당해 아이를 낳은 여인 등 세 명의 남녀가 각기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어설픈 강도행각까지 벌이는 ‘엎치락뒤치락’의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나리오는 박 감독의 절친이자 서강대 동문인 이무영 감독과 공동으로 썼습니다. ‘달은 해가 꾸는 꿈’ 이후 거의 5년여 만에 영화연출의 기회를 잡은 박 감독으로서는 절치부심의 각오를 영화에 쏟아 부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박 감독에게 연출의 기회를 쥐어준 제작사(시네 2000)의 이춘연 대표가 직접 캐스팅 작업을 진두지휘, 이경영 정선경 김민종 등의 주연배우 라인업까지 꾸려줬으니까요.
감독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년) 이후 5년여만에 '3인조'로 다시 메가폰을 잡게 된 박찬욱 감독.
삼류 나이트클럽에서 색소폰을 불며 살아가는 안(이경영)은 생활고에 못이겨 색소폰을 전당포에 잡힙니다. 집에 돌아온 안은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우고 외간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아내(김부선)를 보고 격분해서 집에 불을 지릅니다.
아이를 장모에게 맡기고 호텔방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던 안은 단순무식한 건달 문(김민종)의 호출을 받습니다. 카페에서 강도행각을 펼치려던 문이 이렇게 안을 끌어들인 겁니다. 들고 있던 총을 얼떨결에 쏘는 바람에 안은 졸지에 공범이 되고 맙니다.
여기에 카페 여종업원 마리아(정선경)도 자신이 낳은 아이를 찾기 위해 이들과 의기투합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카페 강도들의 인상착의에 대해 ‘쪽 째진 눈매’ 운운하며 엉터리로 제보합니다.
이때부터 세 명(삼인조)의 장난같은 진짜 강도행각이 어리버리하게 펼쳐지게 됩니다. 이 와중에 가족이나 여자 등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던 문은 마리아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단순무식한 행동파지만 마리아 앞에만 서면 버벅대기 일쑤입니다.
한편 ‘쪽 째진 눈매’라는 인상착의에 집착한 경찰에 의해서 실제의 안과 문 대신, 엉뚱한 인물들(서경석 이윤석)이 수배되면서 사건은 점차 엉뚱한 방향으로 확대되어 갑니다.
‘강도 삼인조’는 세상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만 늘 어설픕니다. 그래도 마리아의 바람대로 마리아의 아이를 찾아 기쁨에 들뜬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실은 자동차를 도둑맞는 바람에 이들의 강도행각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여기에다 경찰의 추적은 더욱 가까워오고, 문에 대한 증오로 불타는 조폭일당의 복수의 손길도 이들을 점점 조여옵니다. 설상가상 병역기피자로 수배중이었던 사실이 밝혀진 문을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까지 출동하면서 이들 삼인조의 앞날은 점점 더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립니다.
박찬욱 감독(왼쪽)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 준 시네2000의 이춘연 대표(오른쪽).
무엇보다도 ‘3인조’는 B무비(많은 예산과 톱스타들로 만들어지는 메이저 영화들과는 달리 저예산과 무명배우들로 빠른 시간 안에 찍는 영화)스러운 영화로 완성됐습니다. 당시 이경영 김민종 정선경 등은 무명배우와 톱배우의 중간쯤에 위치한 배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펼쳐지는 이야기들, 주류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반기의 메시지들 또한 다분히 하드보일드 풍이었지요.
어찌보면 오늘날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취향과 개성이 이때부터 싹을 틔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허무하고 나른한 표정의 이경영, 거친 눈빛의 단순무식형 김민종, 근친상간에 의해 낳은 아이지만 모성본능을 주체하지 못하는 정선경 등의 캐릭터들은 훗날 ‘복수는 나의 것’ 이나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눈길을 끄는 인물들도 여럿 나옵니다. 류승완 감독이 당시 박찬욱 감독의 연출부로 참여하면서 단역으로 ‘연기’를 펼쳤고, 제작사(시네2000)의 이춘연 대표도 카메오로 출연했습니다.
특히 ‘3인조’는 낙원동 악기상의 전당포 노인 역으로 출연한 故 도금봉(본명 정옥순)의 유작으로도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故 도금봉은 1950~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육체파 여배우’로 불리며 ‘황진이’(1957년, 조긍하 감독) ‘천하일색 양귀비’(1962년, 김기덕 감독) 등에서 관능적인 매력을 발산했던 왕년의 스타였습니다. ‘3인조’ 출연 당시 64세였는데, 2009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인조'의 촬영현장. 김민종은 개봉을 앞두고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의 주문으로 생방송 도중 영화 속의 '쌍욕 대사'를 거침없이 실연해보여 '방송사고'를 쳤다.
‘3인조’를 둘러싼 에피소드 중 압권은 김민종의 ‘방송사고’였습니다. 당시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차 SBS의 연예방송 ‘한밤의 TV연예’에 출연했던 김민종은 영화 속 건달의 대사를 해달라는 진행자의 주문에 실제 ‘쌍욕’을 생방송으로 했던 겁니다. 함께 출연했던 이경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김민종의 언어순화 교육을 잘 하겠습니다”는 애드립으로 그나마 위기를 넘기긴 했습니다만 한동안 시청자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만큼 김민종이 순수했던 시절이었지요.
개봉된 ‘3인조’의 흥행성적표는 초라했습니다. 이 때문에 박찬욱 감독은 ‘삼인조’ 이후에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기 까지 또다시 3년여를 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후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박찬욱 감독의 특별전’에는 늘 ‘3인조’가 상영작 리스트로 올라 있습니다. 박감독 매니아들에겐 언제나 반가운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