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극장] `믿고 보는 배우` 황정민

기사입력 [2018-06-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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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9,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 공개홀에서는 제2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청룡영화상의 단골 MC인 김혜수가 정준호를 새 파트너로 맞아 진행한 이날의 시상식에서는 무엇보다도 너는 내 운명’(2005, 박진표 감독)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황정민의 수상소감이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2005, 박진표 감독)에서 다방 레지(전도연)를 사랑하는 순박한 시골청년 석중 역으로 열연했는데, 이날 수상자로 호명되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무대 위로 올랐습니다. 수상소감을 전하는 순간에도 남우주연상 수상이 믿겨지지 않는 듯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던 황정민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한테도 이런 좋은 상이 오는군요. 우선 매번 마음 속으로 감사드리고 밖으로 표현 못했는데, 하나님께 제일 먼저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들 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왜냐하면 60여명 정도 되는 스탭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근데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제가 한 거는 (손에 든 트로피의 여신상을 쳐다보면서) 여기 발가락 몇 개만 떼어가면 될 것 같아요. 스탭들 한테, 그리고 감독님 한테 너무너무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봄 영화사 대표님, 그 다음에 세 마녀라고 저는 맨날 그러는데, 오정완 대표님, 이유진 이사님, 그 다음에 프로듀서 했던 안수연 PD 그분들께 감사드려요.

그리고 항상 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를 설레게 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할 수 있게 해준 전도연씨 한테 너무너무 감사드린다고,,,,

(전도연이 앉아있는 곳을 향해 손짓하면서) 도연아!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한테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어. 고마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 가족들과 사랑하는 동생과 조카와,,,,지금 지방에서 공연하고 있는 황정민의 운명인 집사람 한테 바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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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2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영화 '달콤한 인생'(2005년, 김지운 감독)으로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 황정민. 

 

황정민의 수상소감은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밥상소감이란 우스개 소리가 생기는가 하면,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개그 소재로 패러디한 콩트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그저 연기 잘하는 개성파 배우로만 인식되어 왔습니다. 흔히 말하는 티켓파워를 지닌 주연배우로까지 여겨지진 않았습니다.

이전까지 그의 명품 연기가 빛을 발했던 영화들로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임순례 감독)를 비롯해 바람난 가족’(2003, 임상수 감독), ‘달콤한 인생’(2005, 김지운 감독)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영화에서 황정민은 모든 감독들로부터 적확한 캐릭터 창조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그의 연기력은 탁월했던 거지요


실제로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직전에 출연했던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는 잔인하면서도 비열한 조폭두목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표현해내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 영화로는 대종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말하자면 한 해에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으로 청룡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달콤한 인생으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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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생결단'(2006년, 최호 감독)의 기자간담회에서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황정민. 
 

황정민은 1970년 마산에서 출생했으나 서울로 와 배재중학교와 계원예고를 졸업했습니다. 계원예고 연극영화과(7) 출신이어서 얼핏 연기의 기본기를 고교시절에 닦았을 것 같지만 고교시절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남아 있어서 연기보다는 무대스태프로 더많은 훈련을 쌓았습니다. 다만 연극한다는 것에 미쳐서 지냈던 시간이기는 했습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한 것도 연극이 좋아서였지요. 대학에서의 진공 또한 무대미술이었습니다.

황정민의 필모그라피에 보면, 영화 첫 출연작이 장군의 아들’(1990, 임권택 감독)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이었지요. 당시 장군의 아들제작사(태흥영화사)에서 대대적인 신인배우 공모를 했는데, 황정민도 오디션에 나갔던 겁니다. 주요 배역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영화 속 김두한의 종로패거리들이 자주 가는 술집의 웨이터 역할로 얼굴을 비쳤습니다. 그야말로 단역이었지요.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졸업과 군복무를 마치고난 다음부터였습니다. 대부분의 연극배우들이 그러했듯이 황정민 역시 고단한 무명배우의 생활부터 하나하나 헤쳐나가야 했습니다. 거의 10년 가까이 열정 하나만으로 연극무대를 지켰습니다. 특히 극단 학전에서 김윤석 설경구 조승우 등과 함께 무대에서 뒹굴던 시간들은 지금도 그의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운명적인 작품이 된 뮤지컬 캣츠’(1999)를 만나게 됩니다. 이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계원예고 동창생인 지금의 아내(김미혜, 2004년 결혼)와 연인관계로 발전됐으니까요. 어찌보면 이 뮤지컬의 출연이 황정민의 연기인생에도 터닝포인트를 가져다줬는지 모릅니다. 당시 그의 아내는 성균관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뮤지컬 배우로 잘 나가고있을 때였습니다. 이를테면 연인으로부터 자극을 받았다고 할까요. 평소 조용한 타입인 황정민이 이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연기욕심을 펼치기 시작한 게 이때 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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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뮤지컬 '나인'에서 바람둥이 천재 '귀도'역을 맡아 15명의 여자 연기자들과 공연하는 황정민.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이 무렵에 출연한 영화였습니다. 뮤지컬 캣츠의 공연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출연 제안을 받은 것인데, 비교적 소규모의 영화였지만 선뜻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영화의 상업적인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영화 속의 3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드러머로 출연한 황정민은 단박에 영화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제작사(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다음 작품으로 기획 제작하는 영화 바람난 가족에 일찌감치 황정민을 입도선매하듯 캐스팅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황정민은 임상수 감독과 심재명 대표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바람난 변호사 남편역할을 맡아 역시 앞집 고딩과 바람난 아내문소리와의 완벽한 연기 호흡을 보여줬습니다. 비평가들의 찬사가 이어졌음도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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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 참석하는 황정민. 
 

황정민의 연기 인생가도는 이후 지금까지 탄탄대로입니다.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베테랑’(2015, 류승완 감독) 천만 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이른바 쌍천만 배우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비록 천만 영화의 대열에 들지는 않았지만 황정민의 필모그라피 중에는 화제작들이 한두 편이 아닙니다.

곡성’(2016, 나홍진 감독)의 무당(일광), ‘검사외전’(2016, 이일형 감독)의 누명쓰고 감옥에 간 다혈질 검사(변재욱), ‘히말라야’(2015, 이석훈 감독)에서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등반가(엄홍길), ‘신세계’(2013, 박훈정 감독)에서는 전남여수 출신의 화교 조폭(정청) 등 스크린에서 펼쳐낸 그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살아 움직였습니다.

오죽하면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 이구동성으로 믿고 보는 배우라고 하겠습니까. 이중에서도 히말라야를 찍었던 이석훈 감독은 촬영현장에 늘 제일 먼저 나오는 데 놀랐다면서 부지런함과 열정을 빼놓으면 설명이 안되는 배우라고 엄지손락을 치켜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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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연극 '웃음의 대학'에 출연한  황정민.
 

그는 지난 해에 모교인 계원예고에서 1회 자랑스러운 계원인 상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계원예고 출신으로 모교의 명예와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은 겁니다. 황정민 역시 모교에서 받은 상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면서 후배들이 꿈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도록 계속 응원하겠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꿈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은 황정민 자신의 인생 화두이기도 합니다. 많은 영화에 출연하는 가운데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연극무대에 적극 서는 것도 바로 그 일환이지요. 올해 초 예술의 전당에서 세익스피어 원작의 연극 리처드 3에 출연해서도 연극팬들의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았는데요. 그의 연극을 보고 나온 관객들은 하나같이 그 엄청난 대사량과 함께 100분 내내 비틀어진 손목을 유지한 채 곱사등 연기를 펼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고 혀를 찼습니다. 역시 믿고 보는 배우라는 거지요


요즘에는 아내와 함께 공동으로 연예기획사(샘컴퍼니)를 설립하고, 뮤지컬을 제작하거나 강하늘 박정민 한재영 등 동료 배우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사업에도 관심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그는 장동건 정우성 김승우 등과 연예인 야구단(플레이보이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언더드로우 사우스포 투수를 맡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즈의 팬이어서 종종 시구자로 나서기도 합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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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프로야구 두산과 롯데의 경기에 앞서 멋진 폼으로 시구하는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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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국세청 홍보대사로 위촉된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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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TV조선 창사 드라마 '한반도'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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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스포츠코리아 황정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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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세계'(2013년, 박훈정 감독)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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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3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의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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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히말라야'(2015년, 이석훈 감독)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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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스포츠코리아 황정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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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수라' (2016년, 김성수 감독)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황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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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2017년, 류승완 감독)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황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