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lieve 그댄 곁에 없지만
이대로 이별은 아니겠죠
I Believe 나에게 오는 길은
조금 멀리 돌아올 뿐이겠죠
모두 지나간 그 기억 속에서
내가 나를 아프게 하며 눈물을 만들죠
나만큼 울지 않기를 그대만은
눈물없이 나 편하게 떠나주기를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대라는 걸 알기에
난 믿고 있기에 기다릴게요
난 그대여야만 하죠
2001년 7월과 8월, 뜨거운 여름날의 더위가 신승훈의 노래 ‘I Believe’로 속절없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정확하게는 신승훈의 이 노래가 나오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곽재용 감독)를 통해서였습니다.
술에 만취해 채, 지하철 안에서 비틀거리다가 앞에 앉은 할아버지 머리 위에 ‘오버잇‘하면서 쓰러지는 여주인공(전지현)이 자신의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는 남자(차태현)와 벌이는 알콩달콩 러브스토리를 담아낸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와의 가슴 아픈 사연 때문에 정작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질 못합니다.
‘I Believe'는 바로 이런 여주인공을 떠나보내기로 한 남자(차태현)가 여주인공의 맞선남에게 ’그녀에 대해 알아두어야 팁‘을 하나둘씩 알려줄 때 흘러나왔습니다.
여자다운 거 요구하지 말 것, 술은 3잔 이상 먹이지 말 것, 가끔씩 그녀가 때렸을 때 안 아파도 아픈 척 할 것 등을 얘기할 때마다 신승훈의 애절한 음색이 차태현의 안타까운 마음을 짠하게 전해주었지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2000년대 청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전지현.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에서의 깜찍발랄한 연기로 신세대 여배우의 존재감을 한껏 과시했습니다. 사실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 이전까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연기로 인정받기 보다는 CF를 통해 최고의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 마이젯 프린터 CF에서 보여준 그녀의 ‘테크노 댄스’는 가히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의 테크노 댄스는 클럽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젊은이들이 앞다퉈 흉내를 내는 댄스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 프린터의 매출도 엄청난 신장을 기록했지요. 이후 그녀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광고계의 ‘귀한 모델’로 대접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그녀는 처음으로 TV와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SBS TV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1998년)와 영화 ‘화이트 발렌타인’(1999년, 양윤모 감독)이 그것이었습니다. 두 작품을 통해 신인연기상을 수상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녀의 연기력에 점수를 주었다기 보다는 가능성을 격려하는 차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녀가 출연했던 TV드라마나 영화들에서는 그녀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CF스타로만 더욱 깊이 각인되어갔습니다.
그렇게 3년여를 보내던 중 만난 작품이 ‘엽기적인 그녀’였던 겁니다. 2001년 여름은 그야말로 ‘엽기적인 그녀’로 인해서 ‘핫’했습니다. 이렇게 불어닥친 영화 속의 ‘엽기녀 신드롬’은 전지현을 2000년대 청춘의 아이콘으로 포지셔닝시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방금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청순한 모습으로 악동처럼 사고를 치는 그녀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세계 여러곳의 관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일었던 연기력 논란도 일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그해 대종상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 기록은 그녀에게 최연소 수상자(20세)라는 영예도 함께 가져다주었습니다.
2005년 영화 '데이지'(2005년, 유위강 감독)의 스틸 컷.
이후 기획되는 한국 영화들 중 70~80%가 그녀의 출연을 학수고대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영화의 경우에는 시나리오 겉장에 “전지현 아니면 제작 포기”라는 ‘협박인지 애원인지’ 알 수 없는 카피가 씌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호시절에 그녀가 출연을 결정한 영화는 스릴러 영화 ‘4인용 식탁’(2003년, 이수연 감독)였습니다. 그녀 나름의 판단으로는 ‘엽기적인 그녀‘로 덧씌워진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 기면증 환자 캐릭터에 도전한 것이었는데, 너무 크게 망했습니다. 영화의 흥행 뿐만 아니라 그녀의 연기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던 겁니다. 그리고 이를 만회하겠다며 서둘러 출연을 결정한 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2004년, 곽재용 감독)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6년, 정윤철 감독)도 연이어 실패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연기의 기본이 부족하다거나 발성이 형편 없다는 등의 노골적인 혹평도 쏟아졌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요? 그녀는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인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2008년, 크리스 나흔 감독)에 이어 ‘스노우 플라워’(2011년, 웨인왕 감독)에도 출연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해외 진출 시도 또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휴 잭맨과 함께 했던 ‘스노우 플라워’는 한국에서 개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배우가 이 정도로 연속적인 실패를 겪게 되면 좀체로 재기하기 쉽지 않은 게 한국 영화계 현실입니다. 이른바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의 리스트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2006년 전지현 인터뷰.
그렇게 전지현이라는 이름이 점차 대중의 기억에서 희미해질 무렵인 2013년 7월, 그녀는 또다시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며 나타났습니다. ‘도둑들’(최동훈 감독)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역대급 주연배우들이 총출연한 이 영화에서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 시절의 맛깔스런 캐릭터 ‘예니콜’로 컴백을 알렸습니다. 특유의 악동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발산하며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 1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니,그녀의 ‘쓰라린 과거’도 깨끗이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11년만에 부활(?)한 그녀의 미모는 여전했습니다. ‘도둑들’의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결혼까지 했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그녀는 ‘도둑들’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도둑들’의 흥행성공 축하 샴페인 잔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베를린’(2013년, 류승완 감독)의 촬영을 위해 독일, 라트비아 등으로 날아갔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북한대사관의 통역관 역할을 맡아 능숙한 북한사투리 연기까지 능청스럽게 해냈습니다. 공개된 영화에 나타난 그녀는 ‘엽기녀’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묵직한 연기파 배우의 이미지가 가득했습니다. 상큼발랄의 대명사 전지현이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엔 SBS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류 톱스타 ‘천송이 신드롬’을 낳았습니다. ‘도둑들’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수현과 함께 천송이 캐릭터는 국내를 넘어 아시아 전역에 한류의 위용을 떨쳤습니다. 드라마에서 천송이가 사용하는 제품은 무엇이든지 화제가 되었고, 완판되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즐겨하던 ‘치맥’은 국제적인 인기 아이템으로 알려졌습니다.
영화 ‘베를린’과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엄청난 성공을 가져온 2013년은 ‘전지현의 가장 화려했던 날들’로 기억될 겁니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SBS연기대상에서 대상 등 상이란 상은 온통 그녀의 차지였으니까요. 그야말로 ‘전성기’라고 일컬어질만 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엽기적인 그녀’의 시절은 차라리 ‘도약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2012년, 동갑나기 친구와 결혼한 전지현.
전지현에게 ‘쌍천만 여배우‘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암살‘(2015년, 최동훈 감독)도 그녀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필모그라피입니다. 역시 뜨거운 7월에 개봉된 이 영화에서는 특히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과 친일파 귀족의 딸 미츠코의 1인2역을 빼어난 연기력으로 표현해 찬사를 받았습니다. 127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암살‘로 그녀는 14년만에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어느새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만 결혼 전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대중 곁에 서 있습니다. CF스타라는 비아냥이나 연기력 논란에 굴하지 않고, 늘 정면돌파를 택했던 그녀의 돌직구 인생이 어쩌면 ‘쌍천만 여배우’의 동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왕지현, 고려태조 왕건의 후예입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2013년 '제 17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참석한 전지현.
2013년 전지현 인터뷰.
2014년 '제50회 백상예술대상'에 참석한 전지현.
영화 '암살'(2015년, 최동훈 감독)의 언론시사회에서 깜직한 표정을 보여주는 전지현.
2017년 전지현.